2014년 12월 30일 화요일

=나의 따뜻한 어머니하나님의 품!!!=

보금자리

세상을 동경하여
둥지를 떠난 어린 새처럼
힘차게 날개를 펼쳐보지만
맥없이 추락만 거듭하고

떠나온 고향이 그리워
목청 높여 울어도 보지만
너무나 멀어진 보금자리

파도에 밀려가는 모래처럼
오늘도 이리저리
세상의 물결 따라 살아가지만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달려오는
잡힐 것만 같은 그리움 한 움큼

이제는 가고 싶습니다
마지막 방황을 마치고
하늘을 즐겁게 날아다니던
나의 보금자리
어머니 따뜻한 품으로

-시은좌에 올리는 향연-


2014년 12월 9일 화요일

***어머니 사랑***하나님의교회

어머니 사랑

어머니 사랑의 깊이는
헤아릴 길 없네

걸으실 때에나
앉으실 때에나
누우실 때에나
꿈속이라도

자녀만 생각하시는
어머니의 사랑을 
누군들 헤아릴 수 있으리

자식을 두신 것이
천형의 까닭 되어
모진 고통의 세월을
감내해야만 하시는
어머니

잃어버린 자녀 찾으시려
쓰러지셔도 일어서시고
넘어지셔도 다시 서시며
또다시 걸으시는 걸음걸음

어머니

자식이 무엇인지요
대체 자녀가 무엇인지요
패역한 이 죄인
그 사랑 어찌 감당하오리까

끊을 수 없는 
깊고 깊은 거룩한
희생의 사랑은
참으로 가늠할 길이 없나이다

-시은좌에 올리는 향연 중에서-




2014년 12월 8일 월요일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이라고 쓰고 '태양신'이라고 읽는다

다음 기독교인들의 이야기 중 성경적으로 옳은 것은 모두 몇개인가?

ㄱ.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은 일요일이야.

ㄴ.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크리스마스를 지켜야지.

ㄷ. 우리 가족은 일요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교회에 갑니다.

ㄹ. 12월25일에 교회에 가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해요.

조금 의아한 질문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위 문제에 제시된 문장들은 모두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뜬다'와 같이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답을 4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정답은 하나도 없다. 4개의 문장에는 공통적으로 '하나님'또는'예수님'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
바로 그 점이 위의 네 문장 모두 정답이 아닌 이유다. 일요일 예배, 크리스마스 등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날이다. 그렇다면 위의 문장들을 제대로 된 명제로 만들려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  '하나님'이나 '예수님' 을 빼고 그 자리에 '태양신' 이라는 단어를 대입하면 된다.

일요일 예배는 A.D.321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칙령을 내리면서 공식화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고 점차 기독교를 옹호하는 정책을 펼쳐
나갔다. 이는 전부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태양신 미트라를 신앙했으며,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라는 로마 종교계의 최고 직위자 이교의 대제사장 칭호를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일요일을 휴일로 정했을때 '존엄한 태양의 날' '태양의 숭매일' 이라고 명명했다.

크리스마스 역시 이교도의 풍습을 받아들인 것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기념했던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 기독교로 유입되어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둔갑한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다.

교회에서 지키는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가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진 지는 이미 오래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일요일 예배와 크리스마스에서 '하나님'의 존재는 단1퍼센트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태양신'만 있을 뿐이다.

겔8장15~18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보니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태양신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향해 분노하시며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전에서 태양신을 경배하는 행위가 얼마나 가증한 일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태양신의 규례를 지키는 자들은, 단언컨대 너무나도
큰 인지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1.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은 일곱째날 안식일,토요일이야.
2.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새언약 유월절을 지켜야지.
3.우리 가족은 토요일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교회에 갑니다.
4.12월25일은 예수님의 탄생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성도들은 성경적으로 옳은 답과 행실을 합니다.

2014년 12월 1일 월요일

정결한샘물<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정결케 하는 샘물을 주시는 엘로힘 하나님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지금부터 서둘러 준비해야하겠습니다.
하루아침에 성정이 고쳐지지 않는다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더 노력해 보십시요.
우리 속에 아버지 어머니만 모시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생명수로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주시는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슥13장1절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슥14장8절 "그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겔36장24~26절 "내가 너희를 열국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 시대 다윗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 성령이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성경에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를 표상하고 있습니다.(갈4장26절).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리라 하셨으니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서 당신안에 거하는 자녀들에게 생수로 죄와 더러움을 씻어주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수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새 영을 우리 속에 두십니다.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들어도 낯빛이 변하던 굳은 마음, 진리를 외면했던 굳은 마음을 다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이런 것이 생수의 근원 되신 하늘 아버지와
어머니를 우리 안에 모셨을때 이루어집니다. 항상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 깊은 뜻을
헤아릴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를 제대로 배운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계22장17절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생명수를 값없이 받아가라고 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이 부르심의
잔치에 초대된 우리 안에는 항상 아버지 어머니께서 계셔야겠습니다.
다툼이나 노함이나 참지 못하는 일이나. 구원과 관계되지 않은 모든 것을 아버지 어머니
시라면 이런 일로 식구들에게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셨을까, 항상 이 안에 계시는 아버지
어머니께 여쭈어봅시다.

우리 시온 가족들의 신앙이 갈수록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 실천적인 신앙으로 완성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사소한 일로 식구에게 화를 내기도 했는데 이제는 식구들이 다들
아름답게 보이고 끝까지 믿음 지켜서 천국에 꼭 같이 가길 바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는
예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생각을
어리석다고 조롱할지 몰라도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중심에 영접하고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물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룬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그러나 기도하면
후히 주신다 하셨으니 열심히 간구해서 우리 안에 아버지 어머니를 늘 모시고 삽시다.
그리하면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수 있을것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다 이루어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시온
가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의 소원> 제18장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중에서

정결케하는 샘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교회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께 나아와
생명수를 받으세요.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께서 주시는 정도의 길을 받아 올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교회알리미패스티브닷컴

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크리스마스=태양신숭배/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의교회

이교주의의 혼합물,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다. 흔히 그리스도의 뜻을 기리기 위한 의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때 행해지는 의식은 예수님의 생애나 가르침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교도에서 유입된 잡다한 의식의 혼합물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프레이저는 그의 저서에서 “전 로마와 그리스에서 12월 25일을 공휴일로서 축하하는 최대의 이교 예배는 이교 태양신 예배인 미트라 종교였다. 이 동계 축제를 탄생 즉, 태양의 탄생이라고 불렀다”고 밝혔다.

결국 태양신의 탄생일이 기독교 내로 유입되면서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둔갑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크리스마스 때 카톨릭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의식들이 태양신교의 의식과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 태양신교의 의식 중 12월이 되면 3대 축제가 열렸는데, 기독교가 그 풍습 또한 그대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은, 3대 축제 중 하나인 시길라리아(Sigillalia) 제일에 어린아이에게 인형과 같은 선물을 나눠주는 풍습을 계승한 것이다. 며칠 동안 환락을 즐기는 것도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제일의 모습 그대로다.

태양신교의 사상은 크리스마스트리와도 연관이 있다. 고대 바벨론 전설에 따르면 한 상록수가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솟아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새로 솟아난 상록수가 죽은 태양신 니므롯이 그의 아들 담무스 안에서 회생한 것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이 외에도 이집트, 로마 등 여러 국가에서 사철 푸른 나무, 일명 거룩한 나무에 대한 샤머니즘적인 숭배사상이 있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새해가 되면 악마를 물리치기 위하여 집과 주변을 상록수로 꾸며왔던 주술적인 신앙의 형태가 있었다. 이집트에서는 종려나무를 신성시했으며, 로마에서는 전나무를 거룩하게 구별하고 농신제 기간 동안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열매를 장식하며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앙적 행위로 기념해 왔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이러한 나무에 대한 사상을 재현한 것이다.

'Festivals, holy days and saints’ days'는 “크리스마스 나무의 도금한 견과나 볼들은 태양을 상징하며 … 동지절의 모든 축제는 크리스마스에 흡수되었고 … 크리스마스 나무는 오딘(Odin, 스칸디나비아의 신)의 거룩한 전나무에 바친 영예에서 온 것”이라고 기록했다.

어린이들에게 친숙한 산타클로스 역시,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다. 270년경 소아시아 지방(지금의 터키)의 항구도시 파타라에서 태어난 성 니콜라스(St. Nicholas)가 산타클로스의 효시다. 니콜라스는 남몰래 많은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결혼을 하지 못하는 세 자매의 사연을 듣고 그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무도 모르게 금 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고 금덩이는 벽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도움으로 세 자매는 결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이야기는 유럽으로 전해졌다. 12세기 초 프랑스의 수녀들이 니콜라스의 축일(12월 6일)의 하루 전날인 5일에 성 니콜라스의 선행을 기념했고 이후 전 지역으로 이러한 풍습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당시 이들이 기념했던 니콜라스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의 모습과는 다르다. 현재의 산타클로스는 영리 목적으로 조작된 것이며, 물론 그리스도와는 관계가 없다. “오늘날처럼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다니는 모습으로 일반 사람들 앞에 등장한 것은 1822년 성탄절 이브로, 뉴욕의 신학자 클레멘트 무어가 쓴 ‘성 니콜라스의 방문’이라는 시가 효시였으며, 본래 날렵하고 키가 큰 모습에서 통통한 볼에 뚱뚱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토마스 나스트라는 19세기의 만화가가 20년 동안 잡지에 성탄절 삽화를 그리면서 완성한 것이다. 또 현재처럼 빨간 옷을 입게 된 것은 1931년 미국 해돈 선드블롬이 코카콜라 광고를 위해 그린 그림에서 유래한 것이다(시사용어사전 2003).”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약 300년 후,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로 제정되면서 이 같은 태양신 숭배 및 이교도의 풍습이 기독교화된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명목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태양신 축제에 참여하고자 했던 부패한 기독교인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를 통해 이해해볼 수 있다. 크리스마스를 형성하고 있는 모든 풍습과 의식이 그리스도가 아닌 태양신과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예수님의 탄생일도 아니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12월25일,하나님을 믿지않으면서도 이날을
기념하여 모든 세상사람들이 환락에 취해버리는 크리스마스를 굳이 기독교인들이
지켜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믿고 섬긴다한다면 이교주의의
혼합물인 크리스마스는 과감히 버려야 할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우상숭배하는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영생의 축복
약속이 되어있는 새언약을 지키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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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9일 일요일

우리의 구원자 하니님의교회//안상홍님

우리가 기다렸던 하나님,안상홍님

사람은 누구나 몸 속에 제 부모의 피가 흐른다. 부모의 피를 받아 생명을 얻어낸 것이다.
바로 이런 원리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당신의 피를 이어받도록 섭리하신 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성력 1월 14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준비케 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함께했다. 하늘에서 지은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전야(前夜), 유언을 남기시는 자리였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예수님께서 유언을 남기시며 행하신 건 제자들과 유월절을 함께하며 무언가를 ‘먹는’ 것이었다. 그것은 떡과 포도주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먹는 떡이 당신의 살이 될 것이고,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가 당신의 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일찍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하신 말씀에 대한 이행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면 재앙에서 보호해주고 죄도 없애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전에는 어린양을 잡아 대문 앞에 바르면 됐고, 이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약속을 어겼다. 그뿐 아니라 아예 하나님과의 약속을 없던 걸로 해버렸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서다. 아무도 하나님의 살과 피를 이어받을 수 없게 돼버렸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월절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사야 25:6~9)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란 오랫동안 포도주를 쓰지 않았다, 즉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의미다. 자그마치 1600년 동안이다. 세상 그 누구도 유월절을 지켜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유월절을 가르쳐주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안타깝게도 1600년이 흐르는 동안 유월절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지키면 이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켜야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님은  우리가 그 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두 번째 오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이시다. 우리를  새 언약 유월절로 영생을 허락해주시는

안상홍님은  전지전능하신 우리를 구원하실 하나님이시다.


2014년 10월 23일 목요일

~하늘 어머니와 함께 하나님의 교회~

속되고 가증한 것은 들어갈 수 없는 천국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이라면 다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은 성령 안에서
은혜롭게 행합시다. 그것이 옳은 행실이 되어 새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의 아름다운 
세마포가 될 것입니다.

계시록19장6~8절"...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우리가 세마포가 되어야 비로소 신부가 입장할때 혼인잔치에 함께 참여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세마포로서 신부와 같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에는 속된 것이나 가증한 것은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계시록21장25~27절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1장은 우리가 장차 갈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행하는 사람은 결코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속적인 정신에 젖어 있으면 하늘의 것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속되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찾아 행해야하겠습니다. 자기 생각과 모든 악한 믿음을 가지고 순종할 때 보배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수 있습니다.




2014년 10월 19일 일요일

성지순례>>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


'어머니 하나님'계신 한국으로의 성지 순례

성지(聖地)란 특정 종교에서 신성시하는 장소, 종교의 발상지나 종교적인 유적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기독교의 성지는 예루살렘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으면서 ‘한국’을 성지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175만 성도들이다.

하나님의 교회성도들이 한국을 성지로 여기는 까닭은 한국에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전 세계 150개국 1800곳의 해외 교회에서는 해마다 1,500여 명의 성도들이 한국을 방문한다. 어머니 하나님을 만나고 성지 순례를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의 교회 해외 성도들 대부분은 진리를 접하기 전엔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진리를 접하고 어머니 하나님께서 한국에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한 하나님의교회 해외 성도들의 인터뷰다.

“어머니를 만나고 싶고, 한국 문화를 알고 싶어 왔다. 어머니에게서 겸손한 마음과 포용력, 사랑을 많이 느끼고 배웠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이 이렇게 깨끗한 줄 몰랐다. 한국의 길, 풍경, 한국에서 본 모든 광경이 아름다웠다.” 에리커(헝가리, 변호사)

“한국과 한국인들의 아름답고 훌륭한 문화와 겸손, 가족 중심의 따뜻한 분위기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볼 때, ‘어머니’께서 한국에 오신 것은 당연하다. 미국에 돌아가면 한국을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땅이라고 전하겠다." 어거스트(미국, 항공우주연구원)

“그리스는 음식이 다소 투박한데 한국은 음식에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다이어트를 포기할 정도로 한국 음식이 맛있다.” 요안니스(그리스, 전문요리사)

“진리를 받고 한국을 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한국 경제가 이렇게 발전한 줄 몰랐다. 특히 900여 차례의 외침에도 나라가 없어지지 않고 이어져, 미국보다 역사가 훨씬 길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로라(미국, FBI 특수수사관)

“한국이 약 50년 동안 이렇게 많이 발전했다니 정말 놀랍다. 만나는 한국 사람마다 정말 친절해 한국 방문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호르헤 안토니오(싱가포르, 항공 조종사)

해외 성도들은 한복, 태권도, 한옥, 국악, 한국의 맛과 어머니의 사랑을 전하는 김장 담그기 행사를 통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예절을 체험하며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이들이 이렇게 ‘한국’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뭐겠는가.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은 하나님께서 계신 나라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만나고 ‘어머니’의 사랑을 체험하며 한국을 순례한 해외 성도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한국은 ‘제2의 고향’, ‘천국과 가장 가까운 땅’이라고, 그리고 외친다.

"어머니의 나라, 원더풀"
하늘어머니께 받은사랑과 가르침대로 세상에 선한행실과 사랑을 실천하여
밝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해외식구들~

2014년 10월 17일 금요일

아버지안상홍님의뜻<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뜻인가? 황제의 뜻인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아무리 초보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십계명이 무엇인지 정도는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십계명 중 4번째 계명이 바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인데,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는 안식일에 해당하는 일곱째 날 토요일 대신에 첫째 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면서 심지어 매일 매일이 안식일이요 일요일이 일곱째 날이라는 억지주장과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2천 년 전 예수님과 제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사도들과 성도들은 갖은 박해와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로마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안식일을 성수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진리의 순수성을 유린당하지 않기 위해 험난한 산중 사막으로 피해 다니면서 그들의 숭고한 신앙심을 지켜왔다. 그러나 황제의 일요일 휴업령을 따르는 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안식일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일요일을 성수하며 로마 황제로부터 상당한 권력을 부여 받았다.

우리는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할까. 천국을 목표로 누가 뭐라고 하든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황제의 어명에 굴복하여 일요일마다 주일성수 하느라고 헛된 수고를 계속할 것인가.

아직도 주일성수를 외치던 한 권력자의 망령의 명령대로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과 통합을 수없이 반복하는 줏대없는 교단과 대형교회의 위세에 눌려서 식물인간처럼 눈치신앙으로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미지근한 신앙이라면 차리라 오염된 교회를 떠나서 진리를 찾아나서는 가나안교인이 더 낫지 않을까.

이후에는 도대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신앙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신앙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하나님의 뜻대로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하나님의 교회는 황제가 아닌, 목사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곳
오직 천국이 목표를 삼고있기에 하늘 아버지 어머니의 뜻대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교회세계복음선교협회watv.org
하나님의 교회알리미pasteve.com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하나님의 소유//하나님의 교회(안상홍님)

하나님의 소유된 단 하나의 교회

이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와 교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유된 교회는 오직 하나.
바로 하나님의 피를 대가로 사신 교회입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개역한글 사도행전 20:28)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 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르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 (공동번역 사도행전 20:28)

대가를 주고 샀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 곳이 하나님의 택하신 교회며 구원 받을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베드로전서 2:9~10)

그렇다면 하나님의 피로 사신 교회는 어디인가요? 하나님의 피는 새 언약 유월절입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하나님은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세우신 유월절 새 언약으로 백성들을 구속(대가를 주고 속량)하셨습니다. 따라서 피로 사신 교회는 새 언약 유월절로 구원하신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소유된 교회니 당연히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고린도전서 1:2)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갈라디아서 1:13)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고린도전서 10:32)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교회를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아닙니다. 유대교와 구분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의 고유명사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교회가 있으나 하나님의 소유된 단 하나의 교회는 유월절 새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진실uccspase.net

2014년 10월 12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세월호 무료급식 캠프'해단식

온기 가득한 치유의 밥

하나님의교회세계복음선교협회 '세월호 무료급식캠프' 해단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 온기 가득 치유의밥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 헛헛한 영혼 달래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민간단체 유일 지난달 봉사재개,
실종자가족·공무원 '밥심' 지원,
해수부장관등 선행에 감사 표해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총회장·김주철 목사)가 지난 19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운영해 온 세월호 희생자 가족 및 봉사자를 위한 무료급식캠프를 마무리했다.하나님의교회는 세월호 침몰사고 발생 초기인 지난 4월21일 급식캠프를 열어 44일간 실종자 가족을 비롯해 자원봉사자, 사고 대책 관련 공무원 등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한때 하나님의교회 급식캠프도 자원봉사 급식캠프 일괄 철수 방침에 따라 문을 닫았지만, 정성을 다하는 하나님의교회 캠프의 모습을 눈여겨본 전라남도 자원봉사센터의 캠프 재개 요청을 받아 민간단체로는 유일하게 무료급식을 운영했다.

 하나님의교회 해단식에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손영호 진도군 부군수, 이성태 전남 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 등 사고현장을 총괄하는 고위공직자들이 참석한데서, 하나님의교회 무료급식캠프의 진정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주영 장관은 "하나님의교회가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식당을 맡아 운영해줘 큰 힘을 얻었다"며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깊이 감사드린다"고 하나님의교회 봉사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손 부군수도 "44일 동안 준비 과정부터 식사 제공까지 하나님의교회 봉사자들이 어머니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봤다"며 "특히 모두가 자원봉사를 마치고 떠나는 어려운 시기에 다시 시작해줘 정말 큰 힘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하나님의교회는 목포를 중심으로 나주, 해남, 영광, 무안, 화순 등 전남서부지역에서 총 700여 명의 성도들이 무료급식캠프 봉사에 참여해 사고 초기에는 24시간 캠프를 운영하며 하루 1천인분의 식사를 제공하는 등 총 44일간 1만5천인분의 식사를 희생자 가족과 봉사자 등에게 제공했다.

 현장에서 무료급식캠프를 지휘한 목포 하나님의교회 백은선 목사는 "하나님의교회는 무엇보다 우리 신앙의 중심이 되는 어머니 하나님의 사랑이었기에 44일간 자원봉사가 가능했다"며 "하나님의교회 봉사자들이 돌아가더라도 남은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꼭 돌아오길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현장 자원봉사자들을 비롯해 하나님의교회 무료급식 캠프를 찾아 식사를 했던 이들도 급식캠프 봉사자들도 크게 아쉬워했다. 해양경찰청의 한 직원은 "짧은 기간도 아닌데 이렇게 하나님의교회에서 봉사해 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하나님의교회는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인 지난 4월 21일부터 5월 9일까지 팽목항에서 진도실내체육관으로 장소를 옮기며 24시간 무료 급식캠프를 열었고 다시 전남 자원봉사센터의 요청으로 8월 13일에 캠프를 재개해 지난 19일까지 무료급식봉사를 진행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세월호 무료급식캠프' 해단 
온기 가득한 치유의 밥 
헛헛한 영혼 달래다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하나님의 교회//안상홍님//천국소망

참된 신앙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을 왜 믿으시나요? 천국가기위해서요
교회는 왜 나가시나요? 평안을 얻기위해서, 자녀들 교육에 도움이 되어서, 대인관계,....
성경말씀은 왜 살펴보시나요? 하나님 말씀이니까, 지혜와 지식을 얻게 되어서...
예배는 왜 드리나요? 복 받기위해서, 찬양하기위해, 기도하기위해...

세상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천국간다고 생각을 하고 신앙생활을 한다.
그러나, 실상은 천국 갈수있는 생각과 행위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모두 다 육신적인것, 이땅의 소망으로 가득찬 신앙생활을 하고있는것이다.
과연 천국을 소망하며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것은 어떤것일까?

창조주하나님을 기념하는 안식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출애굽기 31:14~17)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에스겔 20:19~20)

믿음의 근간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엿새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죄사함과 영생의 축복 새언약 유월절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예법으로 새 언약을 세워주셨다.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3, 19~20)

새 언약 유월절에는 죄 사함과 영생을 비롯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들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

사람의 본성으로 알려주신 수건규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고린도전서 11:1~3)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 시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거나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바울은 역설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바울의 당부는 오직 한 가지, 거룩함을 덧입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다.

엘로힘,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장면은 성경 전반에 걸쳐 담겨 있다. 다음은 성경 마지막 장에 묘사된 두 분의 구원자에 대한 기록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예언이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신부(bride)는 말 그대로 성령의 아내이니 ‘어머니 하나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과 신부는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이 땅에 오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는 아는것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믿음을 갖고 천국의 소망을 가득품고 참된신앙을 갖고있다.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생명수를 받으라"하나님의 교회//어머니하나님

어머니하나님의 따뜻한 사랑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라디아서 4:26, 31) 

성경은 구원받을 자녀인 우리들에게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가 계신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때 성령이신 재림 그리스도와 함께 자녀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다고 예언하였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지금, 신부이신 어머니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생명수를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그 품 안에 안긴다면 가장 큰 평안을 얻으리라. 

하나님의교회에는 자유자이신 우리의 참 어머니께서 계시고
영생을 허락받을수있는 진리가 있다.

하늘어머니믿는 하나님의 교히watv.org


2014년 10월 4일 토요일

하나님의 교회//안상홍님의 유월절 진리//

어느 목사의 유월절 교리

구약 시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키라하신 유월절
신약 시대 예수님께서 지키라하신 유월절
성령 시대 안상홍님께서 지키라하신 유월절
시대마다 유월절을 안지켜도된다하는 거짓 선지자

모 교단 이단사이비대책위원장이라는 정 모 목사가 하나님께서 지키라하신 절기, 유월절에 대해 전격 비판하고 나섰다. 정 목사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 하나님의교회가 성경대로 지키고 있는 유월절 교리에 대한 글을 연달아 게재해 “하나님의교회의 유월절 교리는 정통교회 교인을 미혹하는 미혹의 교리이면서 가장 중요한 핵심 교리”라며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유월절 날짜와 상관없이 1년에 한 번만이 아니라 횟수도 다양하게 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정 목사는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전날 밤에 양의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림으로 재앙을 면하고 애굽에서 구속받은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이다(출 12:1-14). 이 절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대에 지킬 것을 명하셨고 유대인들은 ‘유대인의 명절’로 대대로 지켜왔다. 유월절의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신 예수님의 모형과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시면서 떡과 잔(포도주)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먹고 마시게 하시고 이것을 행하여 예수님을 기념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마 26:28, 눅 22:20)을 믿으며 ‘주의 만찬’을 행하면서 예수님을 기념했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정 목사의 유월절에 대한 설명은 성경에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유월절 날짜와 상관없이 1년에 횟수도 다양하게 행했다”는 것은 거짓된 주장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유월절을 날짜에 상관없이 여러 번 지켰다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성경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정확하게 유월절 날짜에 맞춰 성만찬을 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7~15)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기를 원하고 원한다”고 하셨다. 아무 날에나 지킬 수 있고 여러 번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굳이 무교절의 첫날, 즉 성력 1월 14일 저녁까지 기다려 유월절 성찬식을 행하였겠는가. “지키기를 원하고 원했다”는 이 말씀만으로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아무 날에나 지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정 목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 받고 영생 얻는 것이지 유월절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 얻는다는 말은 성경에서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성경에 유월절을 지켜야 죄사함 얻는다는 말씀이 한 군데도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친히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이 말씀은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저녁 먹는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고는 당신의 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것’인 ‘포도주’를 주시며 분명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릴 당신의 피라고 하셨다.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피로 표현된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가 필요하다. 다음 날 십자가에서 흘리실 그 피를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유월절 포도주에 담아두셨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유월절 없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는가.

정 목사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는 앞서 “그때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을 믿으며 ‘주의 만찬’을 행하면서 예수님을 기념했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유월절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죄사함 받고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주장인가. 만약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면, 앞서 ‘유월절로 죄사함을 얻었다’는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죄사함을 얻으려고 성만찬을 행했다’는 내용을 기술했다면, 뒤에 ‘성경에는 절대 유월절을 지켜 죄사함 받는다는 내용이 없다’는 주장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교리의 오류를 지적한다면서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는 정 목사의 행태는 그야말로 어불근리(語不近理)라 아니할 수 없다. 유월절은 엄연히 그 날짜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성력 1월 14일이 유월절이다. 하나님조차 때가 되기를 기다리시며 지키신 유월절인데, 어느 누가 그 말씀을 바꿀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본보여주신 대로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 하나님의교회를 이상하게 몰아가는 행위는 곧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바꿔버리는 처사인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영생을 약속하신 유월절을 지킬필요가 없다하고, 정확히 지켜야할 날짜를 알려주셨는데도
지키되 아무날에나 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것은 자신들이 믿는 예수님의 말씀을 아무것도
아닌 말씀으로 여기는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주신 말씀 그대로 순종하면 그것이 믿는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것이 된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람되어오신 예수님과 재림예수님이신 안상홍님을 믿기때문에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을 하고있다. 과연 불순종하면서 여러가지 이유와 변론을 하면서 성경말씀을 그대로 행하지 않는자들에게 구원이 주어질까?
 

2014년 10월 1일 수요일

십자가없는 //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십자가는 우상이다.

왜 이렇게 많은 십자가가 존재하는 것일까?
당신은 십자가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나요?


카톨릭 백과사전은 40가지 모양의 십자가를 소개하는 데만 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만약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유래됐고 이교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이토록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모양의 십자가들, 이들 가운데 머나먼 고대에 기원을 두고 있지 않은 십자가는 하나도 없다. 신약성경 용어주석사전에 의하면 “십자가는 고대 갈데아에서 기원되었고 그 나라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담무스(Tammuz)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의 기념비들과 신전 벽돌에서 타우 십자가(T)를 들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저명한 역사가는 수천 년 동안 바꾸지 않는 여기(이집트)에서 우리는 가장 신성한 상형문자들 가운데서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를 보게 된다. 그러나 특히 ‘이집트의 십자가’ 혹은 타우(T) 십자가로 알려진 것은 자주 원이나 타원이 위에 그려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신비적인 상징이 이 나라에서는 유별난 것이 아니었으니 갈대아인, 페니키아인, 멕시코인이나 두 반구(半球)에 살고 있는 모든 고대인들이 경배했다고 밝혔다 (로마카톨릭주의의 정체, 92쪽). 

이처럼 십자가는 여러 민족들에게 유포되어 신성시 되었다. 중국인들은 십자가를 가장 오래된 고안 도구 중 하나로 여겨 탑벽에 새기거나 사원의 등에 그렸으며, 북아프리카의 카빌 여인들은 이슬람교도지만 미간에 십자가 문신을 했다. 마야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멕시코의 팔렝케에는 ‘십자가 사원’이라 알려진 이교 사원이 있으며, 고대 멕시코인들도 십자가를 토타(tota, 우리 아버지)로 경배하였다. 이 밖에도 수많은 민족들이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를 종교적인 상징으로 사용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이전부터 오랫동안 숭배되어 왔던 것이다.

이같이 지극히 비기독교적인 십자가가 기독교 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배도한 교회들이 수많은 이교도들을 받아들였고 이들 이교도의 부호들과 상징들을
계속 보유하는 것을 광범위하게 허락한 것이다.
더 나아가 가장 자주 쓰이는 형태인 타우나 T의 십자가 조각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사용하도록 채택했다. 그리하여 431년 교회와 사무실 안에 십자가가 도입됐으며
AD 586년경 뾰족탑 위에 십자가를 세우게 됐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상징을 견고히 한 사람은 콘스탄티누스 황제다. 콘스탄티누스의 ‘십자가 환상’과 그에 이은 ‘개종’이 그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비안(Milvian) 다리 전투를 앞두고 꿈을 꾸게 됐다. 십자가가 나타나 ‘정복의 상징’이라고 알려줬고 콘스탄티누스는
그 십자가를 깃발에 그려 진군한 결과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고 한다.
이어 그는 기독교로의 개종을 선언했다.


이러한 일화는 교회 내 십자가 사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교도의 상징인 십자가를 하나님과 연관 짓는 확실한 고리(?)를 만든 셈이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기독교의 십자가 숭배 사상을 정당화시켜줄 수 있는, 콘스탄티누스의 십자가 환상과 개종을 순수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역사가 윌 듀런트는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다. “그의 개종은 진실된 것이었는가? 그것은 노숙한 정치적인 지혜의 발로였을 공산이 크다. 그는 그리스도인 예배의 의식적인 요구에 거의 따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 주교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그는 비록 제국의 단합에 관심을 두어 반대자들을 억압하고자 한다 해도 그리스도계를 휘젓는 신학적인 이견들에 관하여는 별 관심이 없었다. 통치 기간 중 그는 주교들을 정치적 조역자들로 취급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교는 수단이 될 뿐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반면 콘스탄티누스는 태양신교 최고 지도자로서 이교 예배를 돌봐주고 그 권리를 보호해줬다고 한다. 그의 개종은 이교주의와 기독교를 하나로 연합하여 제국의 힘을 모으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물론 십자가 또한 이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가시적 도구였다. 애초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그리스도의 희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출처)하나님의 교회진실알리미패스티브닷컴-
출애굽기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성들을 섬기지 말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우상이라하셨습니다.
십자가도 만들어놓은 형상이고 그 시대의 사형도구 일뿐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의 피는 외면하고 지키라하신 계명들은 무시하면서 십자가형상에다가
그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우상숭배 행위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십자가를 세우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십자가에 있는것이 아니고
오직 이 시대 구원자로 오신 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로 말미암아 구원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능력없는 십자가숭배하고 하나님말씀을 순종하지 않는자들의 결과는
과연 무엇일까요? 멸망이 자명합니다.

2014년 9월 28일 일요일

아버지 안상홍님, 하늘 어머니믿는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교회는 성경대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하나님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 한 분만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아버지 하나님뿐만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만약 하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한 분만 존재하신다면 ‘우리의 형상’이라는 표현이 아니라 ‘나의 형상’이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도 당연히 ‘남자’만 존재하여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 남자만 있는가? 여자도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신 것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마지막 때에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생명수를 주시기 때문이다.

성령(아버지 하나님)과 신부(어머니 하나님)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만난 자가 생명수를 받을 수 있다. 아버지 하나님만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 힘써 알아야 할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령과 신부를 믿고 성령과 신부께서 주시는 생명수를 받고 있다.

출처)아버지하나님,어머니하나님 진리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바된 하나님의 교회는 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를
닮아 재 창조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되신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께서
생명수를 받으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생명수를 받아 구원받으러 하나님의 교회가야합니다.

2014년 9월 27일 토요일

(안식일)지키는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주일은 언제인가?


많은 사람들은 일요일에 주일을 지킵니다.
'주일(主日)'은 말 그대로 '주의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단언컨대 주일은 일요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는 ‘주일성수’다. ‘주의 날’을 줄여 ‘주일(主日)’이라고 칭하며, 대부분 일요일에 지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하나님의 날은 일요일이 아니다. 일요일이 주의 날이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당신의 날이라고 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출애굽기 31:13)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이를 일컬어 ‘나의 안식일’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당신의 백성임을 인지시켜 주시기 위해 안식일 앞에 ‘나의’라는 전제를 두셨다(에스겔 20:20). 이는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약시대 안식일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었듯이 신약시대 안식일의 주인은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이었다.

인자(예수님)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2:8)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6:5)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 것은 ‘여호와의 안식일’이 곧 ‘예수님의 안식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키셨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이처럼 성경은 구약에서 신약에 이르기까지 안식일을 ‘하나님의 날’로 명시했다. 그래서 사도들은 주의 날인 안식일을 지키며 말씀을 강론하곤 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 (사도행전17:2)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행전 18:4)

성경에서 말하는 주일(主日)은 일요일이 아니라 안식일이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주 여호와의 날이었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주 예수님의 날로 성별하여 거룩히 지켰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이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계시록 1:10)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볼 때가 주후 90년경이었으니 그때까지도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변함없이 안식일을 주일로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한 주일, 즉 하나님의 날을 지키고 싶다면 일요일이 아닌 일곱째 날 안식일, 토요일에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교회 진리전하는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 교회는 주일 즉, 하나님의 날이 일곱째날인 토요일이 확실히 알고 
안식일을 지키고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본이 되시는 구원자이신 예수님과 사도들은
일곱째날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의 모본으로 삼고있는 
사도들의 행적을 성경을 통해 보면서도 성경에는 전혀 있지도않고 지키지도않았던 
일요일 예배를 행하고 있습니다. 
과연 축복과 구원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의 은혜를 받고 싶다면 
일곱째날(토요일) 안식을 지키러 하나님의 교회로 오세요~~
 

2014년 9월 26일 금요일

우리와함께하시는 어머니하나님!!하나님의교회~

세상으로 나오신 하나님!!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을 성경속에 가두지 않고, 인간의 생각과 선입견속에 가두지않고
매일 매일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함께하고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해 성경을 펼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저 성경이라는 오래된 기록 속에 갇혀있는, 아득히 멀기만 한 분이다. 그래서 그 존재가 피부로 선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듯하다. 관념적인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성경을 덮어버린다. 그리고 하나님을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 속에 가둬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성경 밖으로 나오셨다. 그것도 ‘어머니’이라는 이름으로,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닌 우리 곁에서 손을 잡아주시고 웃어주시며 말을 건네시는 어머니 하나님으로 말이다. 전 세계 유일무이하게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175만 성도는 사람으로 오신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은 곧 아버지’라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대부분 ‘어머니 하나님’하면 생소해한다. 그러나 모든 생명체가 어머니를 통해 생명을 얻게 되는 자연의 이치처럼, 우리에게 영적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도 ‘어머니’이신 것은 당연하다(요한계시록 4:11, 로마서 1:20). 무엇보다 성경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마태복음 6:9)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이처럼 성경에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 놀라운 것은 ‘성경 속에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성경 속에 어머니 하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 현재 이 시간 하나님의교회 성도들과 함께 계신다.

2천 년 전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러셨듯, 유월절 세족예식이면 어머니 하나님께서 손수 성도들의 발을 씻어주신다. 또한 교회의 각종 봉사활동에 늘 앞장서신다. 하나님이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시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성도들을 섬겨주시는 어머니는 성도들에게 가장 큰 자랑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영혼을 만들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까지 찾아오신 어머니 하나님.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만났다는 것은 ‘행복 그 자체’다. 이에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아시아는 물론 유럽,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곳곳에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은 성도들이 모두가 하나같이 한국에 오신 어머니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다.

아직까지 어머니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는가. 그것은 아직 진정한 행복을 만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내.해외 하나님의 교회는 날마다 행복을 느끼고있다.
이유는 어머니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따뜻한 사랑을
날마다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겸손을 본보이시며 가르쳐주신 어머니의
사랑이 하늘에 닿았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교회watv.org



2014년 9월 25일 목요일

새언약 유월절=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우리가 기다렸던 하나님은,안상홍님.

사람은 누구나 몸 속에 제 부모의 피가 흐른다. 부모의 피를 받아 생명을 얻어낸 것이다. 바로 이런 원리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당신의 피를 이어받도록 섭리하신 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성력 1월 14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준비케 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함께했다. 하늘에서 지은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전야(前夜), 유언을 남기시는 자리였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예수님께서 유언을 남기시며 행하신 건 제자들과 유월절을 함께하며 무언가를 ‘먹는’ 것이었다. 그것은 떡과 포도주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먹는 떡이 당신의 살이 될 것이고,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가 당신의 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일찍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하신 말씀에 대한 이행이었다.
구약시대 여호와하나님께서 지키라하신 유월절,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지키라하신 유월절
성령시대 안상홍님께서 회복시켜주신 유월절.공통점은 하나님께서 지키라하신것, 재앙에서
보호를 받는것, 영생을 얻는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면 재앙에서 보호해주고 죄도 없애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전에는 어린양을 잡아 대문 앞에 바르면 됐고, 이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약속을 어겼다. 그뿐 아니라 아예 하나님과의 약속을 없던 걸로 해버렸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서다. 아무도 하나님의 살과 피를 이어받을 수 없게 돼버렸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월절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사야 25:6~9)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란 오랫동안 포도주를 쓰지 않았다, 즉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의미다. 자그마치 1600년 동안이다. 세상 그 누구도 유월절을 지켜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유월절을 가르쳐주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안타깝게도 1600년이 흐르는 동안 유월절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지키면 이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켜야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의교회에는 생명의 진리인 새언약 유월절이 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고 영생을 허락
받는 새언약 유월절이야 말로 최상의 진리이다. 사망을 멸하고 영생을 허락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그래서 이시대 새언약 유월절을 회복해주신 안상홍님은 하나님이시다.



2014년 9월 23일 화요일

범죄집단=하피모

범죄집단 하피모의 정체
하나님의 교회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하피모...알고보니 가해자인 범죄집단??

하피모의 행위는 결국 피해자의 모임이 아닙니다..그들의 실체는 가해자요 범법자입니다...

하피모의 이런 행동들은 그들의 범죄를 가중시키는 행위요 
그들이 오히려 비방선동 하는 단체임을 명확히
알려주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행동과 말을 하는 하피모
그들에게는 더이상 속아서는 안됩니다.


2014년 9월 22일 월요일

하나님의 절기-나팔절-하나님의 교회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나팔절

이스라엘 민족들이 지켰던 가을절기의 시작을 알렸던 나팔절은
안도와기쁨,회개 등의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다.


고대 시대 나팔은 중요한 수단이었다. 특히 전쟁에 있어 지휘와 명령 전달의 도구였던 나팔의 역할은 가장 중요했다. 통신 장비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 공격과 후퇴, 출발, 멈춤, 대오 정렬, 무기 준비, 발사 등이 모두 나팔소리로 이루어졌다. 이외에도 성경에서는 더 다양한 나팔의 쓰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지파가 이동할 때 나팔을 불었다. 각 지파들의 소집과 해산 등이 나팔로 가능했으며 기쁠 때도 나팔을 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부는 나팔 중 성경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나팔은 성력 7월 1일 나팔절에 불었던 나팔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지켰던 가을절기의 시작을 알렸던 나팔절은 안도와 기쁨, 회개 등의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다.

나팔절의 의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집트를 나온 후 처음 십계명을 받아 온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주신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내려오던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배도를 목격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기 위해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으리라 여겼던 모세는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보고 그 자리에서 십계명을 던져 깨뜨려버렸다. 그날 이스라엘 백성들 중 삼천 명가량이 죽었다.

그 후 모세는 백성들의 죄사함을 위해 진과 멀리 떨어진 곳에 회막을 치고 매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날의 죄로 하나님께 버려질까 염려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회막에서 기도하는 모세를 보며 자신들의 죄를 뉘우쳤다. 귀걸이며 목걸이를 볼 때마다 금송아지를 만들며 휘청거리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너무도 어리석었던 그때를 돌아보며 몸에 지니고 있던 단장품들을 모두 제했다.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께서 노를 거두시기만을 바랐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매일이 더 간절했다. 그렇게 40일이 흘렀다. 엄숙하고 조용한 가운데 한 달이 조금 넘었을 때 하나님께서 다시 모세를 부르셨다. 다시금 십계명을 허락해주신 것이다.

백성들은 이제야 안도했다. 그리고 기뻤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축복을 받는 다는 생각에 마음이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이제 열흘 후면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올 것이다. 백성들은 처음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날을 기억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나팔을 불었다. 길게 부는 나팔은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나팔이었다. 나팔을 불며 모세를 기다리던 백성들은 한 사람이라도 우상에 빠지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러한 모세의 행적을 따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팔절을 제정해주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레위기 23: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레위기 23:23~24)

나팔절은 가을절기의 대표되는 초막절 속에 들어간다. 초막절 안에는 나팔절과 대속죄일, 초막절이 편성돼 있다. 날짜도 성력 7월 한 달 안에 모두 들어 있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의 시작인 나팔절이 되면 예루살렘을 방문해왔다. 예수님께서도 초막절을 맞아 예루살렘에서 전도하신 것은 초막절뿐 아니라 초막절에 내포되어 있는 나팔절과 대속죄일도 함께 지키셨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2, 14, 37)

나팔절은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일곱 절기 가운데 다섯 번째 절기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절기다.

하나님의 절기가 있는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은 하나님의 절기로 구원을 약속하셨다.
안식일,유월절...나팔절,대속죄일,초막절 이있다.

2014년 9월 15일 월요일

멜기세덱으로 오신 안상홍님

멜기세덱, 예수님 그리고 안상홍님

멜기세덱, 예수님, 안상홍님. 
이분들의 공통점이 있다. 특이하게도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빌어주셨다는 점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은 중요한 인물이다. 구원자에 대한 예언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멜기세덱에 관한 기록은 약 4천 년 전,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과의 만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기 14:17~20)

구약시대 당시 제사장들이 많이 있었지만 떡과 포도주로 복을 빈 사람은 멜기세덱뿐이었다. 신약에 와서도 유월절에 다른 제사장들은 모두 짐승으로 제사드렸지만 떡과 포도주로 축복을 주신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다.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7~20)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하신 약속에 대한 이행이었다. 이 말씀을 종합해보면 예수님은 유월절에 먹고 마시는 떡과 포도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유일하게 유월절 떡과 포도주로 영원한 생명을 이어받게 해주신 분이 있다. 안상홍님이다. 안상홍님은 325년 니케아종교회의 이후 사라져버린 생명의 진리, 새 언약의 유월절을 다시금 가지고 오셔서 멜기세덱의 예언을 완전하게 이루신 분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이사야 25:6~9)

사망을 영원히 멸하는 새언약 유월절로 영생의 축복을 허락하시며 연회를 베풀어주신
안상홍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분명한 하나님이시다.

2014년 9월 12일 금요일

하나님의절기로 하나님의 교회

진정한 클라이머가 되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요즘, 덩달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등산. 등산이 남녀노소 모두에게 큰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등산은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모험심과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인내심을 길러주고, 만족감과 자신감, 우울증을 해소하는 등 정신 건강을 좋게 한다. 정상으로 이어진 꾸불꾸불한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에너지 소비가 높아져 체지방 감소에 효과가 있으며,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낮춰주고, 운동부족으로 인한 만성질환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와 깨끗한 산소 등 몸에 유익한 성분을 흡수함으로써 몸을 정화시키고, 근력운동을 함으로써 골밀도가 높아져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일반적인 ‘등산’이 있는가 하면, 좀 더 기술적이고 전문적으로 산을 오르는 '등반'도 있다. 등반은 '암벽 등반', '빙벽 등반'이란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험준하고 난이도가 높은 산을 정복하기 위해 손과 발을 쓰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는 산을 오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등반하는 등반가를 '클라이머(climber)'라고 하는데 이들은 특별한 기술과 로프, 특수 장비를 갖추어 산을 오른다. 인정받는 클라이머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과 역경이 따르지만, 모든 어려움을 인내로 이겨내고 마침내 등반에 성공하면 전 세계인이 주목하고 찬사를 보낼 정도로 가치 있고 영예로운 일이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산에 등반할 영적 클라이머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시편 24:3)

마지막 때에는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으로 알려질 것이며 수많은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들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가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으로 올라가자. 그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실 것이며 우리는 그 진리대로 살 것이다.' 이것은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사야 2:2~3, 현대인의성경)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 시온산을 향해 등반에 나서며 영적 클라이머를 자처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시온산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엉터리 등반길에 나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방향을 잃어 시온산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곳을 향해 등반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이 계신 진정한 시온산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이사야 33:20~21)

하나님께서 위엄 중에 함께하시는 시온산의 특징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킨다는 것이다. 진정한 시온산을 향해 제대로 된 등반길에 나선 영적 클라이머라면 하나님의 절기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 어디인지, 무엇보다 시온산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어떤 모습으로 함께하시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께서 기다려주시고 인정해주시는 진정한 클라이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영적 클라이머가 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무조건 나만 믿고 따라오라는 식의 사람을 따라가지만 않으면 된다. 다시 말해, 시온산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을 따라 등반길을 나서면 된다. 구별하는 방법은 쉽다.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고 있는지 여부를 직접 보고 확인해보면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도 인정받는 클라이머가 되기까지는 많은 인내와 고난이 따르듯, 영적 클라이머에게도 인내가 요구된다(누가복음 8:15, 요한계시록 3:10, 14:12). 어쩌면 시온산 등반은 더 큰 인내가 필요하다. 시온산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로부터 온갖 비방과 조롱과 핍박이 있어도 끝까지 견디며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인내, 진정한 하나님의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감언이설과 거짓말로 꾀어내더라도 신념을 잃지 않고 오히려 제대로 된 시온산 등반길을 알려줄 수 있는 인내 말이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영적 클라이머들은 세상의 클라이머처럼 한 번 등반에 성공했다고 해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시온산에서 하나님의 절기를 한 번 지켰다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한 클라이머로 인정받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 안에 생존한 자 중 기록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사야 4:3)

여호와여 주의 율례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시편 119:33)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24:13)

시온산 등반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다. 그리고 시온산에 등반해서 끝까지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시온산을 등반하는 진정한 클라이머는 어쩌다 한번 하나님의 절기를 지켰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올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자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시온산을 오르는 클라이머가 되어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 영예를 얻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절기를 반드시 알고 지켜야만 한다.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엉뚱하게 지키고 있는 주일예배,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은 하나님의 절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절기는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절기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 유래와 법도가 기록된 절기만이 하나님의 절기다. 하나님의 시온산에 오른 진정한 클라이머가 되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통해 직접 하나님의 절기를 알아보고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절기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이사야33:20)
시온산에 올라 구원을 완수할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절기뿐이다.
하나님의 절기는 분명히 성경에 모두 기록이 되어있다. 성경을 올바로 보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절기를 알수있을것이다.
출처)하나님의교회알리미패스티브닷컴


2014년 9월 7일 일요일

~주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교회~

스스로의 합리화,
모럴 다이어트

회사 거래처에 지하철을 타고 갔사.
회사에는 택시비로 결레를 올린다.
퇴근 시간,풀을 사로라는 아이의 부탁에 사무실에 있던 풀과 연필 몇 자루를 챙긴다.
사거리 길, 마주 오는 차량이 없어 녹색 신호로 바뀌지도 않았는데 비보호 좌회전을 한다.
모두 사소한 부정행위들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나름대로 정직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에 이런
경미한 부정행위는 눈감아준다. 
그리고 스스로를 여전히 도덕적이며 정직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도덕성의 척도를 자기만의 기준으로 합리화하는 심리를 
'모럴 다이어트(moral diet)'라고 한다.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칼로리 섭취를 줄이듯 자기 합리화를 위해 
도덕성까지 줄이려는 심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모럴 다이어트 현상은 일상에서 빈번히 일어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무단횡단하기, 상점에서 거스름돈을 더 받고도 
모르는 척하기 등 모럴 다이어트 사례는 의외로 많다.
199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과 교수 게리 베커(Gary S,BecKer)는
모럴 다이어트 심리를 '불확실성하의 합리적 선택'이라는 말로 정리했다. 
즉 인간은 부정행위로부너 기대되는 이득과 손실을 비교해 손실보다 이득이 클 때 부정행위를 저지른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에서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관점보다, 행위에 따를 
결과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만 비교하기 때문이다.

모럴 다이어트 사례는 기독교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5세기경 로마가톨릭은 성경의 십계명을 바꿔버렸다. 
'성 아구스티노의 분류'라고 불리는 이 십계명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첫째 계명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둘째 계명이 사라졌다.
    또한 네 번째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주일을 지키라'로 둔갑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에는 "더 합리적인 이 분류가 차차 우세하여 
그 후 가톨릭에서는 이 분류가 일반화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합리적이라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마음대로 주물러댄 '성 아우구스티노의 분류'는 
영적 모럴 다이어트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변개시켰다는 죄책감보다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가 먼저였기에, 
하나님에 대한 양심은 저버리더라도 결과에 따른 이득이 커 보여서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생활 속의 모럴 다이어트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눈감아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앙 속의 모럴 다이어트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계22장18~19절"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엘로히스트9월호 중에서>

(패스티브닷컴은 하나님의 진리와 성경 지식을  공유하는 웹사이트입니다.)

2014년 9월 5일 금요일

십자가는 없고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

십자가에 대하여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고 교회 탑 위에나 내부에 두고 있으며 교인들은 이를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과연 십자가가 교회의 상징이며 섬김의 대상인지 교리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십자가는 섬김의 대상이다

근거
사실상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세워 섬기라는 말씀은 성경에 없다. 이에 대한 근거는 역사책에서만 살펴볼 수 있는데 Baker's 신학사전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십자가가 사형틀로 사용된 것은 헬라인과 로마인들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이것을 또한 페니키아인과 페르샤인과 카르타고인들에게서 물려받았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 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자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십자가가 교회 안으로 유입된 것은 로마교회의 타락에서부터 시작된다. 로마교회는 이교도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들이 섬기던 대상도 함께 허락했다. 그중에 하나가 십자가다. 십자가가 교회와 사무실 안에 도입된 것은 AD 431년이며 교회 탑 위에 올라간 것은 AD 568년경부터다. 십자가를 숭배하는 교인들은 성경의 이 말씀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라디아서 6:14)

교단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이나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교단들은 천주교와 개신교 5대 교파, 여호와의증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통일교) 등이 있다.

결론
2천 년 전,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교인들은 십자가를 ‘저주받은 나무’로 생각했다(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희생당한 끔찍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예수님 이전에도 사형틀로 사용되던 나무에 불과했다. 만약 예수님께서 십자가가 아닌 단두대형을 받았다면 오늘날 교회에는 또 다른 형상물이 존재하지 않을까.

십자가는 우상이다

근거
십자가가 우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경이 이를 명백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4~6)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반포하시는 장면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둘째 계명으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세우지 말며,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또한 십자가를 숭배할 것에 대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보았느냐 유다 족속이 여기서 행한 가증한 일을 적다 하겠느냐 그들이 강포로 이 땅에 채우고 또다시 내 노를 격동하고 심지어 나무가지를 그 코에 두었느니라 (에스겔 8:17)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뭇가지에 불과한 십자가를 섬길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가증하다’며 그들의 죄가 작지 않음을 꼬집으셨다. 이와 함께 모세를 통해 오늘날 교인들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저버리고 십자가만 섬길 것을 보여주신 내용도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수기 21:4~9)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던 노중에서 일어난 일이다. 하나님을 원망한 백성들이 불뱀에게 물려 많은 사상자가 나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으로 뱀 형상을 만들라고 하셨다. 그 형상을 보는 모든 사람이 살 수 있었다.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놋뱀 형상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놋조각)이라 일컬었더라 (열왕기하 18:3~4)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놋으로 만들었던 뱀 형상을 이때까지 숭배했다. 800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쳐다보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형이고 놋뱀은 유형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 칼뱅의 저서인 기독교 강요에서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기록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만들자마자 즉시 하나님의 권능이 그 형상에 부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을 형상화하고 나서는 여기에 하나님을 결부시키고 마침내는 그것을 예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단순히 우상만을 예배하든지, 하나님을 우상으로 예배하든지, 거기에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 (기독교강요 184쪽 ‘형상물의 사용은 마침내는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한다’ 中)

이 모든 성경 말씀들을 살펴볼 때 십자가를 세워 상징으로 삼는다든지, 섬긴다든지 하는 내용들은 모두 우상 숭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단
십자가를 우상으로 여겨 세우지 않는 교단은 대표적으로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있고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등 몇몇 개신교가 있다.

결론
십자가는 우상이다. 성경이 이를 증거하고 있으며 교회의 역사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Baker's 신학사전에서도 “초대 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끔찍한 것을 하나님께서 계시는 교회의 내부에, 또는 탑 꼭대기에 두고 상징이라, 거룩한 존재라며 성스럽게 여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십자가는 한낱 저주받은 나무로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그리스도의 고결하신 희생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1:18~19)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주어지는것이다. 십자가와 같은 형상이 
우리가 섬겨야할 대상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의 교회는 아무 능력도 없는 십자가를 섬기거나 의지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항상 함께하시는 엘로힘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진실알리미패스티브닷컴


2014년 9월 3일 수요일

아름다운 결실을 하는 하나님의 교회~

결실하는 콩나무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자라"
-마태복음18장4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떠한 상황과 여건속에 두시더라도
모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란것을 
잊지말고, 항상 어린아이처럼 내 자신을 낮추고
아버지 어머니하나님을 의지하고 찾는 자녀가 되어야하겠습니다.


2014년 9월 2일 화요일

천국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교회

죽어보지 않아서

부시맨이 처음 콜라병을 발견했을 때 그는 그것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전혀 본 적이 없고 경
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글이나 밀림 속에서만 사는 사람은 문명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루살이는 ‘내일’이라는 시간을, 베짱이는 내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물속에서만 사는 동물은 육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육지가 있으며, 내일과 내년이라는 시간과 문명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언가에 대한 의심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불확신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한 천국에 대해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이 실제 있는지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천국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직접 천국을 경험했던 한 사람의 증언을 들어보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고린도후서 12:1~4)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브리서 11:13~16)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린도전서 2:9)

사도 바울은 천국을 분명히 경험했다. 그곳은 우리 인생들의 고향이며, 사람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천국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그곳을 이해할 수도 없다. 그리고 어떤 이는 천국의 실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믿고 안 믿고는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이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곤충들이 경험하지 못한 내일과 내년이라는 시간을 끊임없이 경험하고 있고, 곤충들이 경험하지 못한 우주세계를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세상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확인하지 못한 수만 가지의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뒤늦게, 죽은 뒤에야 천국이 있음을 확인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지금부터 영혼의 고향인 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게 현명하지 않겠는가.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신명기 18:21~22)

하나님의 말씀에는 증거와 증험이 있다. 지금부터 마음을 열고 성경을 살펴보라. 그러면 구원도, 천국도, 하나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었던 영원의 세계, 아름다운 천국을 현실로 보게 될 것이다.

이 땅의 삶을 주신것은 회개할수있고, 축복을 쌓을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이다.
죽은후에는 회개할수도 축복을 쌓는일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 있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 안상홍님께서도 우리에게 천국을 알려주시기위해 오시었다. 천국의 모든 비밀을
알려주실분은 오직 하나님뿐인것 . 하나님의 교회는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를 통해서
매일 천국의 소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회개의 삶과 축복을 쌓는 일에 열심내고 있다.


2014년 9월 1일 월요일

안식일지키는 하나님의 교회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믿음의 가장 큰 목적은 영원한 천국, 즉 평안히 영원한 안식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원한 안식을 어떻게 얻게 되는지 살펴보도록하자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이라도 원석(原石)이었을 때는 돌덩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만일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갖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며, 혹 갖게 되더라도 아무 데나 방치해 두었다가 누군가 달라고 하면 선뜻 내주기 쉽다. 무엇이든 가치를 알지 못하면 경홀히 여길 수밖에 없고, 결국 잃어버리게 되어 있다. 오직 가치를 아는 자만이 그것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키라 하신 일곱째 날 안식일도 이와 같다. 안식일은 단지 ‘예배를 드리는 날’이 아니라 우리 영혼에 있어 보배로운 날이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숭고한 은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보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안식일의 참된 가치를 깨달아야만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이사야 56:2)

그렇다면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일과 ‘안식(安息)’이라는 단어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안식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쉬시며 그날을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셨다. 이 말은 일곱째 날 자체가 복을 받고 거룩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날을 지키는 백성들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다.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 (에스겔 20:12)

또한 하나님의 창조사업에 대해 기술할 때,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반복적으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니라” 하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더 이상 이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는 6일 창조에 대한 예언이 6천년 구속사업에 대한 예언으로, 7일째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처럼 7천 년째부터는 더 이상 시간의 끝이 없는, 영원한 안식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대한 예언은 아직 다 성취되지 않았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베드로후서 3:8)”는 말씀과 같이 6일 창조의 역사는 6천 년간 이루시는 영적 창조, 즉 구원의 역사를 예표한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은 7천 년째 당하는 안식 천년의 예언으로써, 구원받은 자녀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왕 노릇하며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요한계시록 20:4~6, 22:5).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 편안히 쉬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뿐더러 이 땅에서는 아무리 편히 쉰다고 해도 실상 쉬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것, 편안한 것도 잠시간일 뿐 그조차도 여전히 힘이 들기 때문이다(전도서 1:8, 2:22).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안식은 다르다. 사망도, 눈물도, 애통함도, 고통도, 아픔도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누리게 되는 그야말로 ‘완전한 안식’이기 때문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4)

이처럼 안식일은 엄청난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만 이 모든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안식처에 들어갈 약속은 아직도 효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그곳에 들어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들은 말씀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그렇다면 그 안식처에 들어갈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먼저 기쁜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이 일을 마치고 쉬신 것처럼 자기 일을 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순종하다가 멸망한 사람들처럼 되지 말고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 (히브리서 4:1~11, 현대인의성경)

구약시대 하나님께 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신약시대 하나님께 순종하는 백성들에게는 천국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축복해주신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안식일을 세상 끝 날까지 지키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24:20).

하나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질 때, 안식일의 가치를 깨달아 굳이 잡고 있었던 인생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매주 일곱째 날마다 이 보배를 우리에게 값없이 나누어주고 계신다.

영원한 안식에 예표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지키는 일곱째날 안식일임을 확인하였다.
안식일을 지키지않고 어찌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누릴수있으랴?




2014년 8월 30일 토요일

천국 혼인잔치=하나님의 교회



어떤 초대 


한 나라의 왕 혹은 대통령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퍽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런데 당신은 곧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 어느때든지 누군가에 의해 초대를 받게된다,초대하는
대상자가 누군인가에 따라 기분이 좋아질수도 나빠질수도 있다.

1937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 2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신부 실종’이다. 기사는 혼인을 일주일 앞둔 신부 김영자의 행방을 찾는 내용이다.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신부가 없어지다니, 신랑과 가족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성경에도 이 사건과 흡사한 내용이 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 (마태복음 22:1~1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신부가 보이지 않는다. 신랑과 하객은 있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신부는 어디로 갔을까. 혹자는 “성경의 신부는 성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그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 속 신랑은 예수님 자신이며 청한 사람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9:15, 마가복음 2:20, 누가복음 5:35)

이 말씀에서는 청한 사람들, 즉 성도를 혼인집의 손님들이라 비유하셨다. 하객을 불러놓고 신부 대신 결혼을 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성도는 결코 신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일까. 신부가 언급되지 않았던 공관복음서의 기록과는 달리 천국 혼인잔치가 성대히 열리는 장면을 기록하며 아내, 즉 신부를 언급해놓은 책이 있다. 요한계시록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7~9)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리는 모습과 그의 신부, 
청함을 받은 손님들을 계시로 보았다.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은 당연히 성도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인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신부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도 요한의 요청에 천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다. 이 하늘 예루살렘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신부를 일컬어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라 했으며 하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다. 그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의 아내는 당연히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성도인 우리는 과연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온 기성교인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잣대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6~7)

예루살렘이 단순히 성벽이라면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찬송을 받게 하시겠는가.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즉, 이 말씀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사도 바울이 증거한 우리의 어머니 즉, 하늘 어머니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예루살렘을 세운다고 하셨는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영적 예루살렘이신 하늘 어머니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섬기고 알아야 하는 하늘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세워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려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세기 2:22~23)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오자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며 ‘여자’라 칭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에 아담과 하와는 단지 아담과 하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경 맨 마지막에 ‘오실 자’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예수님이다. 즉 아담은 오실 자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아담이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아담이 하와를 일컬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칭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해 주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창세기 3:20)

또한 아담의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준 것도 아담이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이다. 
이 말씀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늘 어머니를 알려주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세워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낳으시고 구원하실 하늘 어머니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나아온 자들이 천국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이다.

신부이신 하늘어머니를 부인하는자들이 어찌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할수가 있겠는가?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는것을 알아야할것이다.





2014년 8월 29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 행하는 수건규례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하나님의 교회는 여성도들이 머리수건을 씁니다.이유는 성경에 머리수건규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여성도들에게 머리수건을 쓰라 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도시대로 접어들면서 복음은 유대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여러 이방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다른 규례와 마찬가지로 여자 성도들이 수건을 쓰는 문제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순종하여 잘 지켜왔다. 그런데 차츰 남녀평등을 선호하는 부류들이 생겨나면서 “남자들이 쓰지 않는 수건을 구태여 여자들이 써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고린도 지역에서 반발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사도 바울은 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여자들이 마땅히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함을 강조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린도전서 11:1)

사도 바울은 먼저 성도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이 자신의 사상이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이어 예배 때 여 성도들은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머리수건 규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드릴 때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이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의미는 구약의 율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 앞에서 수건을 벗는 행위를 아주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다. 또한, 포로로 잡혀온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수치스러움을 씻기 위하여 그 여자의 머리를 밀었다. 다시 말해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말씀은 대단히 수치스럽다는 뜻이다. 이것이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그 첫 번째 이유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는 작은 것 하나라도 의미 없이 정하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우리가 천국 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정하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배를 드릴 때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규례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남자 성도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하며, 여자 성도들은 수건으로 그 머리를 가려야 한다.

출처)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위의 내용을 살펴보았듯이 머리수건 규례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규례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수건규례를 지키는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 쓰지말라하신 남자도 쓰는곳이 있지요...
수건규례는 작은것 같지만 지키지않으면 엄청난 결과를 받게 된다는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자가 천국에 들어가리라(마태복음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