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30일 토요일

천국 혼인잔치=하나님의 교회



어떤 초대 


한 나라의 왕 혹은 대통령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퍽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런데 당신은 곧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게 될 것이다. 

이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언제 어느때든지 누군가에 의해 초대를 받게된다,초대하는
대상자가 누군인가에 따라 기분이 좋아질수도 나빠질수도 있다.

1937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 2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신부 실종’이다. 기사는 혼인을 일주일 앞둔 신부 김영자의 행방을 찾는 내용이다.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신부가 없어지다니, 신랑과 가족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성경에도 이 사건과 흡사한 내용이 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한지라 ···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 (마태복음 22:1~1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신부가 보이지 않는다. 신랑과 하객은 있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신부는 어디로 갔을까. 혹자는 “성경의 신부는 성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그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 속 신랑은 예수님 자신이며 청한 사람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9:15, 마가복음 2:20, 누가복음 5:35)

이 말씀에서는 청한 사람들, 즉 성도를 혼인집의 손님들이라 비유하셨다. 하객을 불러놓고 신부 대신 결혼을 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성도는 결코 신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일까. 신부가 언급되지 않았던 공관복음서의 기록과는 달리 천국 혼인잔치가 성대히 열리는 장면을 기록하며 아내, 즉 신부를 언급해놓은 책이 있다. 요한계시록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7~9)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리는 모습과 그의 신부, 
청함을 받은 손님들을 계시로 보았다.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은 당연히 성도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인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신부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도 요한의 요청에 천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다. 이 하늘 예루살렘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신부를 일컬어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라 했으며 하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다. 그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의 아내는 당연히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성도인 우리는 과연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온 기성교인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잣대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6~7)

예루살렘이 단순히 성벽이라면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찬송을 받게 하시겠는가.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즉, 이 말씀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사도 바울이 증거한 우리의 어머니 즉, 하늘 어머니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예루살렘을 세운다고 하셨는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영적 예루살렘이신 하늘 어머니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섬기고 알아야 하는 하늘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세워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려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세기 2:22~23)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오자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며 ‘여자’라 칭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에 아담과 하와는 단지 아담과 하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경 맨 마지막에 ‘오실 자’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예수님이다. 즉 아담은 오실 자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아담이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아담이 하와를 일컬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칭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해 주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창세기 3:20)

또한 아담의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준 것도 아담이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이다. 
이 말씀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늘 어머니를 알려주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세워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낳으시고 구원하실 하늘 어머니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
하늘 아버지 어머니께 나아온 자들이 천국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이다.

신부이신 하늘어머니를 부인하는자들이 어찌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할수가 있겠는가?
천국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자가 구원의 축복을 받게 되는것을 알아야할것이다.





2014년 8월 29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 행하는 수건규례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하나님의 교회는 여성도들이 머리수건을 씁니다.이유는 성경에 머리수건규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여성도들에게 머리수건을 쓰라 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도시대로 접어들면서 복음은 유대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여러 이방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다른 규례와 마찬가지로 여자 성도들이 수건을 쓰는 문제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순종하여 잘 지켜왔다. 그런데 차츰 남녀평등을 선호하는 부류들이 생겨나면서 “남자들이 쓰지 않는 수건을 구태여 여자들이 써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고린도 지역에서 반발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사도 바울은 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여자들이 마땅히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함을 강조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린도전서 11:1)

사도 바울은 먼저 성도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이 자신의 사상이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이어 예배 때 여 성도들은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머리수건 규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드릴 때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이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의미는 구약의 율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 앞에서 수건을 벗는 행위를 아주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다. 또한, 포로로 잡혀온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수치스러움을 씻기 위하여 그 여자의 머리를 밀었다. 다시 말해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말씀은 대단히 수치스럽다는 뜻이다. 이것이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그 첫 번째 이유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는 작은 것 하나라도 의미 없이 정하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우리가 천국 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정하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배를 드릴 때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규례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남자 성도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하며, 여자 성도들은 수건으로 그 머리를 가려야 한다.

출처)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위의 내용을 살펴보았듯이 머리수건 규례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규례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수건규례를 지키는 곳이 없습니다.
심지어 쓰지말라하신 남자도 쓰는곳이 있지요...
수건규례는 작은것 같지만 지키지않으면 엄청난 결과를 받게 된다는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자가 천국에 들어가리라(마태복음7:21)


2014년 8월 27일 수요일

예루살렘으로 가야하는 이유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예루살렘을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순례 여행을 꿈꾸는 곳 예루살렘. 사람 되어 오신 하나님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희생하시며 구원을 완성시킨 골고다 언덕, 핏방울을 흘리며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 등 하나님의 흔적이 서려 있고 구원의 역사가 펼쳐졌던 현장을 목도한다는 것은 분명 가슴 벅찬 일일 것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이끌어간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옮겨 신앙의 중심지로 삼은 이래 오늘날까지도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단순한 순례의 목적을 벗어나 재앙의 피난처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밀레니엄버그(Y2K)로 온 세상이 떠들썩했던 1999년에는 사상 초유의 인파로 대혼잡을 빚기도 했으며, 전쟁의 징후가 느껴진다 싶으면 예루살렘 내의 호텔은 피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이는 신앙의 궁극적 목적이자 염원인 구원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한 행위인데, 그도 그럴 것이 성경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자고이래 성경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예루살렘은 구원이 태동하며 예언이 꿈틀거리는, 아주 특별하고 성스러운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 …. 그럼 예루살렘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영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실 리 만무하다. 과연 예루살렘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그 해답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근간이 되고 있는 ‘성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아라비아에 있는 예루살렘 말고도 ‘또 다른 예루살렘’이 있다고 말한다. 그 ‘또 다른 예루살렘’은 도대체 어디인가. 이사야 선지자와 사도 요한이 보았던 예루살렘은 참으로 영묘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지어다”,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같이···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라는 묘사들이 그것이다.

이 묘사들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코 아라비아에 있는 예루살렘처럼 고정된 장소, 땅이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중에서도 여성, 특히 ‘어머니’의 모습으로 인류에게 사랑과 자비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이 수수께끼 같은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한마디로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위에 있는 예루살렘, 다시 말해 하늘 예루살렘이 이 시대 인류가 찾아야 할 ‘또 다른’ 예루살렘인 것이다.

새 예루살렘 어머니 하나님을 찾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은 자명하다. 굳이 비행기 티켓을 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일은 꿈만 같은 일이겠지만, “너희의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 했던 사도 바울의 말대로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실종 아동의 부모들이 그렇듯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아 이 땅까지 오셨다. 이것이 새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이유다.

예루살렘되신 하늘어머니에게서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출처)하나님의 교회 진실알리미pasteve.com




2014년 8월 25일 월요일

안식일 터위에 세움받은 하나님의교회

사도들이 지킨 안식일...


성경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안식일 지키는 증거들이 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일요일예배가
습관,풍습,전통처럼 내려왔기때문에 안식일에 대해 소중함을 제대로 알지못한다.

기독교 내에는 안식일에 관한 루머들이 떠돌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신약시대에 와서는 안식일을 지킨 적이 없다”,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주장일까. 먼저, 믿음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셨는지, 지키지 않으셨는지 살펴보자.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누가는 “예수님께서 '자기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키셨다”고 기록하였다. '규례'라는 말의 뜻은 '규칙(規則)과 정례(定例)'를 의미한다. 즉 예수님께서는 매 안식일마다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안식일을 지켰을까. “십자가 사건 이후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루머대로라면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다음에는 안식일을 지킨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는 사도들과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다음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날은 예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좇아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둔 것을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더라 ···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더라 (누가복음 23:52~56)

예수님의 장례를 치른 후 예수님을 따르던 성도들은 계명을 좇아 안식일을 지켰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후에도 여전히 성도들은 안식일을 지켰던 것이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이후로도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규례로 지키셨던 안식일을 지켰다.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 (사도행전 16:12~13)

사도 바울 일행이 안식일에 기도처를 찾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다.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는 와중에도 각 여행지에서 안식일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안식일을 지켰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 (사도행전 17:1~2)

이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행전 18:1~3)

이렇듯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본받아 안식일마다 자기 규례, 즉 규칙과 정례대로 안식일을 지켰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도, 사도들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켰지만 사도시대 이후부터는 이방인인 우리들은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세상 끝날까지 지켜야 할 계명으로 알려주셨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마태복음 24:3, 20)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에 대한 교훈을 하시며 “너희의 도망하는 날이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 말의 뜻은 세상 끝날까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시면서 친히 지키신 예수님의 계명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도들이 규례대로 지킨 계명이며, 우리들이 마지막 때까지 지켜야 할 계명이다.

예수님의 본을 보이신대로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교회 뿐이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들을 버리고 전혀 다른 것들을
행한다면 과연 그 믿음이 올바른 믿음일까?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2014년 8월 23일 토요일

새 언약 유월절을 회복시키신 안상홍님



새 언약 유월절의 폐지와 회복

오늘날 하나님을 믿노라하는 사람중에 새 언약 유월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사람은 없다.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새 언약 유월절이 폐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월절은 다시 회복이 될것이라는 예언에따라
마지막 성령시대에 등장하시는 하나님께서 폐지된 유월절을
회복해 주시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희생으로 새 언약 유월절을 세우셨다. 
그러나 새 언약 유월절은 AD 325년 로마교회에 의해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로마교회(카톨릭)는 사도시대 이후 
이미 진리를 변경시켜 유월절을 없애고 성찬식을 부활절에 행하는 풍습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유월절 성찬식을 언제 하느냐는 문제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사이에 여러 차례 논쟁이 있었다.

155년경 서머나교회 감독 폴리캅과 로마교회 감독 아니케터스 사이에 논쟁이 있었으나 
서로 다르게 그날을 지키기로 하였다. 167년 키드 박사는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197년 로마 교황 빅터는 유월절 성찬식을 
부활절에 하라는 도미닉의 규칙을 전 교회에 강요하였다.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를 비롯한 아시아 교회는 이 조치를 거부하였으며 
폴리크라테스는 사도들의 전승을 따라 유월절을 지킨다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빅터는 아시아의 모든 교회를 비정통으로 몰아 파문하려 하였으나 
여러 교회 지도자의 만류로 파문 조치를 취소하였다. 

유월절 성찬식 날짜를 둘러싼 동서방 교회 사이의 논쟁은
 결국 325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주관한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로마교회의 
주장대로 유월절을 폐지하고 성찬식을 부활절에 지키는 것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되어 이를 '부활절 일자문제'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동방은 유월절을 지키고'라는 내용에서 보듯이 이는 유월절 성찬식 날짜 문제였다.
 325년 니케아 회의 이후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은 이단으로 몰려 광야와 산중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결국 유월절 진리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채 오늘날에 이르렀다. 
유월절이 없이는 영생도, 죄 사함도 없다. 
1600년간 사라졌던 생명의 절기 유월절을 과연 누가 회복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진리가 유월절 새 언약이다. 
사라져버린 새 언약 유월절을 회복하여 주신 분이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이다. 
안상홍님이 세우신 하나님의교회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경에 따라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영생의 축복을 받을수 있는 새 언약
유월절을 알려주시었는가?
오직 안상홍님뿐이시다.


2014년 8월 22일 금요일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불러도되는거지??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 하면 아버지만 떠올린다. 마태복음 6
장 9절의 기도문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수없이 암송해왔고 귀에 익숙해진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하나님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성경에 있는 어머니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어머니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어머니하나님으로 생각지를 
못한다. 이유는 어머니 하나님은 없다라는 결론을 무언중에
내리고 성경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미국의 한 기독교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 ‘Is It Okay to Call God "Mother"?: Considering the Feminine Face of God’이라는 책인데, 대략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불러도 되는 거지?’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하나님의 남성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여성적인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성경적 근거를 통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성적인 하나님의 모성을 역설하면서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불러야 할 것을 매우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글 중에서 특별히 시선이 멈춘 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If we here on earth believe that a child grows up best with a father and a mother doesn't it also make sense that as a child of God we have a Heavenly Father and a Heavenly Mother?(이 땅에서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심으로써 최상의 양육을 받을 수 있음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자녀 또한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찌 이해되지 않습니까?)”

이 책의 내용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발견하고 인식했다는 점에서 크리스천들에게 너무나 쇼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많은 언론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
(www.watv.org ‘스페셜 리포트’ 참고).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4장 26절을 통해 증거한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곧 우리 어머니”라는 말씀을 처음 보는 사람도 꽤 많은 것 같다. 필자도 처음에는 어머니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쉽지 않았다. 하도 금시초문 생소한 표현이라 한동안 당황했었지만, 성경에 있는 진리를 어찌 부인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옛말에 사람은 견문이 넓고 도량이 넓어야 하며,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 것 같다.

분명히 성경에는 하늘아버지뿐만 아니라, 하늘 어머니께서 함께 생명수를 허락해주신다고
예언되었있다. 무조건 어머니하나님은 없다라고 부인만 한다면 구원이 있을까?

출처)하나님의교회진실알리미패스티브닷컴

2014년 8월 20일 수요일

하나님을 사랑하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왜?


지역 언론사에 몸담고 있을 때였다. 아내를 심하게 폭행해 경찰에 연행된 한 남편의 변명이 기억에 남는다. “왜 그랬나?”는 경찰의 물음에 남자는 “사랑해서다”라고 말했다. 사랑해서 아내를 폭행했단다.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사랑한다면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 또는 요구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 등이 표출돼야 마땅하다. 사랑해서 폭행을 가했다는 것은 삐뚤어진 애정표현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랑한다면서 상대에게 잔인한 행동을 일삼고 있는 것은 비단 그 남자만이 아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기성교단들의 행태가 이렇다. 결코 비약이 아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9)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부끄러움이 되거든 (머리수건을) 쓸지니라 (고린도전서 11:6)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에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사도행전 2:1)

명절 끝날(초막절)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한복음 7:37~38)

예수님께서 행하신 새 언약 안식일, 유월절, 수건 규례, 오순절, 초막절 등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성경대로 어느 하나 행하는 것이 있는가. 지금 열거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는지 물어보고 싶을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다(요한복음 14:15). 그러나 오늘날 많은 기성교단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계명은 지키지 않는다. 되려 성경에 없는 주일성수, 추수감사절 등 사람의 계명은 철저히 지킨다. 성경의 기록대로라면 하나님을 외면하는 꼴이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 1:3)

성령과 신부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시록22:17)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생명수를 받으러 오라하시는 성령과신부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고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하지않을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에 새기고 지키려는 자세쯤은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말이다.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어머니의교훈 실천하는 하나님의교회

어머니의 교훈을 실천하자...







하늘 어머니께서는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 받은 우리는 너무 행복합니다.


하늘 어머니께서는 형제,자매를 섬겨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이십니다.
그 겸손을 배운 우리는 서로 서로 섬겨줍니다.



하나님의교회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서로 서로 섬겨주는 겸손과 배려가 있습니다.
하늘 어머니에게서 선한 가르침을 받으세요...

하나님의 교회 공식홈페이지www.watv.org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안상홍님께서 알려주신 영혼의 존재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사람의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22)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몸으로 돌려보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아마도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 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옷이 아무리 비싸도 저절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몸이다. 
벗어놓은 옷과 같다. 중요성을 논하자면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영혼의 존재가 있기에 하나님을 믿는 목적도 영혼 구원에 있는것이다.
취미생활, 대인관계,상업적인 목적을 갖고 교회를 찾는사람들이 과연 
영혼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볼수없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8~9)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다. 영혼구원이 없는 신앙은 월급 없는 직장과 같다. 즐겁고 보람찬 것 같아도 결국 헛된 수고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교회들이 서로 다른 교리를 가르치며 서로 다른 모습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구원을 받는 올바른 믿음의 길은 무엇일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전하는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많이 행하였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신앙, 불법을 행하는 신앙은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수고는 많이 하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영혼의 구원을 얻는 이유가 뭘까?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55)

영생을 약속하신 이 말씀을 따르는 여부에 따라 생명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는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육체의 삶은 잠시 있다 없어질 순간의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삶은 영원토록 이어지는 것이지요.지금 현재 준비해야할것은
영원한 삶인 영혼의 삶입니다.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새 언약 유월절을 알려주셨습니다.

출처)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2014년 8월 17일 일요일

아버지하나님,어머니하나님 왜 사람되어오셨을까?


왜 사람되어 오셨을까?


아름답고 광활한 천사세계에서 아버지,어머니하나님께서
왜 이땅에 친히 오실수 밖에 없었는지 살펴보자.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태양과 지구가 적절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양빛으로 인해 사람들이 살아가고 동식물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은 전적으로 이로운 존재만은 아니다. 태양을 직접 바라보게 된다면 실명하게 될 위험이 있고, 태양의 자외선으로 인해 각종 질병이 유발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농작물 피해는 물론 사망자도 속출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관계가 있다.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한일서 1:5)

성경은 하나님을 빛으로 비유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영체의 모습 그대로 오신다면 어떻게 될까. 3500년 전 십계명을 반포하시던 상황이 재현될 것이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출애굽기 20:1~19)

하나님의 영체를 본다면 아무도 살 자가 없다(출애굽기 33:20). 하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사람으로 오실 수 없다”며 사람으로 오신 재림 그리스도를 배척한다. 하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예언을 문자 그대로 믿기 때문이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복음 1:9~13)

하나님을 빛에 비유하듯 구름도 비유다. 성경 곳곳에는 ‘사람’을 ‘구름’에 비유하고 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브리서 12:1)”, “저희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물 없는 구름(유다서 1:12)”,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잠언 25:14)” 등이 그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원리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우리와 동일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태양조차도 견딜 수 없는 우리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영체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과연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을까.

마지막 이 시대에 우리 구원을 위해 등장하신 아버지 하나님어머니하나님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1:26)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지으시고 사람을 창조하실때도 아버지하나님,어머니하나님의
존재를 알게하시고.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것에 대한 예언도 하셨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9:2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시록22:17)

이처럼...
우리 구원을 위하여 다시오시는 하나님은 성령과신부이신 아버지하나님
어머니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친히 허락하실것에 대한 예언도 하셨다

이 예언의 말씀뿐 아니라 성경66권 곳곳에 당신의 존재를 알려놓으셨다.
무조건 없다.아니다.안된다.라는 말로 내 생각의 틀에 하나님을 가두고 부정만 할것이아니라
진정한 구원을 원한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엘로힘 하나님을 영접하자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2014년 8월 16일 토요일

성경이 말하는 가증한것

이제는 제대로 알자...

8월14일 로마 카톨릭 교황이 방한을 했다.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교황??!!. 로마 카톨릭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바티칸은 0.44km2의 작은 영토와 1,000명이 채 안 되는 인구로 이루어진 초소형 국가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세계 10억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물론, 전 세계에 미치고 있다.

교황은 세계 3대 종교를 비롯해 아프리카 원시종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 지도자들과 손잡은 자리에서 세계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의 사도’라는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중세에 카톨릭이 걸어온 발자취를 보면 ‘평화의 사도’로 불리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위선적인지 확인할 수 있다.

중세시대 로마 카톨릭은 유럽 지역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당시의 카톨릭은 매우 타락했고 잔혹했다. 그 타락상과 잔혹성을 신랄하게 증명하고 있는 역사가 바로 ‘종교재판’이다. 종교재판을 위해 설치된, ‘거룩한 사무소’라고 불렸던 이단심문소(異端審問所)는 초국가적 통치기관으로서 이단자들에게 잔인한 고문과 처형을 자행했다.

종교재판소를 최초로 창설한 교황은 인노첸시오 3세다. 당시 프랑스의 알비와 툴루즈를 중심으로 카타리파(알비파)가 교세를 확장하여 카톨릭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자, 이들을 박멸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고안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이단심문소는 교황이 자기 뜻대로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기구였다.

1233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지던 종교재판을 공식화하여 도미니크수도회의 수도사를 이단심문관으로 임명했다. 1252년에는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박멸에 관하여’라는 교서를 내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 사용을 허락했다.

이단자들만 재판하던 카톨릭이 민중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마녀재판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5세기 무렵부터다. 1484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가 독일에서 유행하던 마술을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마녀로 고발당하면 여지없이 기소되어 이단심문소로 연행됐다. 심문관들은 다양하고 잔인한 고문을 통해 용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거나 증거를 날조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예를 들면, 어떻게 마녀가 되었는가, 얼마 동안 마녀 짓을 하였는가,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혔는가, 어느 악령을 섬기는가, 마법 집회의 참석자와 공범자는 누구인가, 어떻게 공중을 날 수 있는가, 악령과 결합하여 몸에 어떤 표시가 남았는가 등이었다.

대부분은 무고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죄를 인정할 리 없었지만, 그럴 경우 더욱 가혹한 고문이 가해졌다. 고문기구와 그 방법들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밧줄로 묶어 도르래를 이용해 공중에 매달았다가 갑자기 바닥에 내동댕이쳐 신체를 상하게 하는가 하면, 사람 몸통 크기의 철제도구 안쪽에 쇠꼬챙이가 돋아 있는 이른바 ‘블랙 버진’에 가두기도 했다. 송곳을 박은 큰 롤러에 묶은 채 돌리기도 하고, 손발톱을 뽑거나 고문기구로 손마디나 발가락을 뭉개기도 했다. 귀나 입에 끓는 납을 붓기도 하고, 살점이 튀도록 채찍질을 하고, 눈을 빼는 일도 있었다. 못이 박힌 철제의자에 앉힌 뒤 밑에서 불을 때기도 하고, 가시 박힌 신발을 신게 하거나, 불에 달군 쇠막대로 지지는 등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잔혹한 방법들을 동원해 고문을 가했다.

심문관들은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을 위해 행하는 것이므로 만약 죄가 없다면 하나님이 구해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굳이 자백을 하지 않아도 마녀의 증거를 들이대며 악랄하게 고문했다. 용의자들의 손발을 묶고 강이나 늪, 호수 등에 던졌는데 이때 만약 가라앉아 죽으면 결백한 사람이기에 하나님이 그를 받아들인 것으로 간주하고, 물위에 떠오르면 “악마는 자기를 경배하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녀가 맞다”라며 즉시 처형했다. 고문을 당해 죽거나 사형을 당해 죽거나 죽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악마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 사람들을 완전 나체로 만들어 체모, 항문, 음부를 조사하고 머리카락에서 치모까지 모조리 깎거나 고문대에 묶어놓고 바늘로 가슴과 혓바닥, 심지어 성기 속까지 찔러댔다. 고통을 느끼면 마녀라고 억지를 부렸다. 대개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저절로 얼굴을 찡그리게 되고 결국 마녀라는 판정을 받고 화형 또는 교수형을 당했다.

역사가들은 종교재판, 이단심판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된 마녀사냥은 상업적인 목적을 띠고 있었다고 말한다. 마녀 혐의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체의 비용을 직접 지불해야 했다. 판사 인건비, 고문도구 대여료, 고문 기술자 급여 등 체포부터 재판에 소요되는 비용을 용의자가 지불하도록 규정돼 있었고, 마녀로 확정 판결을 받을 경우는 사형을 집행하는 데 드는 비용, 관값뿐 아니라 ‘마녀세’라 이름한 세금을 교황에게 내야 했다. 심지어 사형과 함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했다. 결국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교황과 고문관들이 상속인이 되는 셈인데, 돈 많은 과부들이 주로 마녀로 몰렸던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이탈리아, 스페인을 끝으로 종교재판을 폐지하기까지 약 600년 동안 5천만 명에서 7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매일 230여 명을 죽였다는 얘기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가장 거룩하고 성스럽게 믿는다고 자부하는 카톨릭의 이야기다.


내 백성가,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계18:4)
이제는 성경을 바로 바라보자. 애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

2014년 8월 15일 금요일

하피모단체=>전문가들의 진단=과대망상의 위험한단체


하피모...범죄 심리학자들의 진단

하피모의 단체를 일반인이 봐도 비정상적인 단체라고 생각을 하는데,전문가들 마저도
그들을 정상적인 단체라고 보지를 못하고있다. 오히려 위험한 단체라 진단을 하고있다.

<긴급진단3> ‘헤이트 스피치’ 집단에 대한 전문가 진단 
범죄 심리학자들, “과대망상 의심·위험한 단체”

<직격 인터뷰> 하피모 강씨의 ‘헤이트 스피치’, 정신의학적·심리학적 견해

특정집단을 매도하며 악의적으로 증오심을 고취하는 ‘헤이트 스피치(증오선동)’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두 차례(4월 14일, 5월 7일)에 걸쳐 ‘헤이트 스피치긴급진단 1·2’ 특집기사를 연재했다. ‘긴급진단 1’에서는 ‘대한민국도 더이상 헤이트 스피치 안전지대 아니다’라는 주제로 특정교단을 상대로 증오선동 활동을 벌이는 하피모(하나님의교회피해자대책모임·대표 이덕술 목사)의 실체를 분석했다.

‘긴급진단 2’에서는 하피모 회원이자 시오니즘(하나님의교회탈퇴자모임) 대표인 강모(41)씨가 중국 하얼빈에서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며, 중국인의 재산을 갈취한 사기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이 보도를 통해 피해자로 둔갑한 가해자 단체인 하피모의 범법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들의 ‘야누스적 행태’를 접한 독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피모가 법적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오로지 불법 활동에 전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지는 ‘긴급진단 3편’에서 실정법도 무시하고 상식을 벗어난 행각을 벌여온 하피모 단체와 자칭 재림주인 강씨의 헤이트스피치 활동, 지난 2007년 11월에 자신을 재림주로 주장한 하얼빈 선언문 등을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범죄심리학자들을 통해 정신의학적·심리학적 측면에서 진단해 보았다.


진단1. 신경과 전문의 손석한 박사


“하얼빈 선언한 강씨의 행적은 전형적인 사기범 유형”
“피해망상 가지고 타인 권리 짓밟는 반사회적·자기애적 성향”
“타인의 고통이나 피해에 둔감…방치하면 더 큰 피해 양산”

Q : 강씨의 중국 행적을 보면, 그의 심리상태는 어떠한가.
A : 자기가 재림주라고 선언할 당시에는 망상적 상태에 있었던 것같다. 공안들과 대치할 때는 망상적 상태에 있다가 나중에 경찰서에서 눈물을 보인 걸로 봐서는 현실과 망상 상태에서 왔다갔다 한 것 같다.

Q : 증인과 증거가 다 있는데도 중국에서 했던 이상한 행동들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A :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 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은 자신이 정말 그렇다고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한 행동을 부인하는 것을 보면 ‘리플리 증후군’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의 행적을 모두 부인하면서 끝까지 본인이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기범들의 특징이다.

Q : 전형적인 사기범의 특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A :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나 불이익에 굉장히 둔감하고 그것을 무시한다는 점이다. 반복적인 사기범, 반사회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은 도덕심이 거의 없다. 또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을 하기 쉽다. 자신이 반종교적인 단체 행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 쪽에서 나를 인정 안 해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식의 논리를 펴는 거다.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

Q : 하피모나 강씨의 활동을 방치하면 어떤 결과가 올까.
A : 어떤 사람들이 선동을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과장되게 주장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통해 금전적 이익이나 명성 등을 얻게 되면 그 믿음의 강도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리플리 증후군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처음에는 거짓말인 것을 알면서도 그 생각에 심취하면서 빠져들고 나중에는 무엇이 진실인지 아닌지 구분하기가 모호해진다. 원래 자신의 동조세력을 만드는 데는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증오와 같은 부정적 감정의 전염도는 굉장히 높다.

이런 활동을 계속 방치할 경우 증오선동 양상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사람들의 언행이 언론에서 여과 없이 다뤄지고 점점 더 유명세를 얻으면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관심이 없고 그들에게 동조하기 쉽다. 결국 헤이트 스피치의 목표 대상이 된 집단이나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중간 생략-법무경찰신문-하피모

진단2. 범죄심리분석 전문가 공정식 박사


“강씨, 폭력 선동하는 히틀러 같은 위험 인물”
“망상적 사명 가진 증오범죄 유형, 폭력 선동해 자기 합리화”
“사명감으로 형성된 왜곡된 인지구조…정신적 치료 어려워”

Q : 국내에서는 헤이트 스피치를 제한하는 법규가 없어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같다.
A : 증오심으로 나타난 행위들에 대해서는 처벌 규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특징이 망상성도 있지만 사상적으로 무장이 돼 있다는 점이다. 종교증오 범죄자는 종교적인 사상으로 무장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전혀 죄의식 같은 것이 없다.

Q : 강씨의 헤이트 스피치 활동은 어떤 심리적 특징을 갖고 있나.
A : 증오범죄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그 중에 ‘사명형’인 것 같다.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이 주로 갖는 증오 형태이다. 악을 제거하고 전사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동기를 가지고 심각한 폭행을 계속 선동한다. 강씨는 허상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걸로 봐서 일종의 ‘망상적 사명’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증오범죄를 하는 사람들의 성격은 강박성, 비합리성이 특징이며 증오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편집증적 성향, 부정적 인생관을 갖고 있고 근본적으로 성격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치료가 어렵다. 강씨도 복합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간 생략-법무경찰신문-하피모

진단3. 범죄심리학 대가 이수정 교수

'하피모' 헤이트 스피치, 피해의식 기반한 적대감과 분풀이
“자기중심적·자아도취적 사고로 과대망상…합리적사고 불가”
“반사회적 성격장애…사회에 대한 적대감·피해의식 존재”
“내재된 분노 해소할 만한 화풀이 대상 찾아 맹비난 일삼아”

Q : 중국과 한국에서 벌인 강씨의 행적에 대한 전문가적 견해는.
A : 일단 사기 범죄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봐도 유인가(誘引價)가 있는, 즉 충분히 범죄의 이유가 될 만한 합리적 목적이 있다. 문제는 목표를 달성할 합법적인 방법이 없으니까 사기 수법으로 목표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이다. 강씨는 사기로 얻을 수 있는 소득보다 오히려 이런 행위를 함으로써 잃는 손실의 양이 더 클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신용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 기존의 인간관계도 끊어질 가능성이 짙다. 그런데 이렇게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데는 병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고장애 내지는 망상에 가까운 일종의 성격적 문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에서의 행적은 자기중심적·도취적 사고에 기인하는 과대망상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람들은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합리적 사고를 못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Q : 헤이트 스피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어떤가.
A : 기본적으로 분노가 내재돼 있다. 오랜 기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냉대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적대감이나 분노가 일반인이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 일종의 화풀이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분노를 느낀 대상자에게 직접 화풀이를 할 수 없어 더 만만한 대상을 찾는다. 집안 식구들이 일차적 대상이 되고, 구성원들이 그를 떠나서 분풀이할 대상이 없으면 길거리로 나와 만만하고 비난을 받을 만한 대상을 선택한다.

그 대상이 누가 되든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자기 안에 쌓여 있던 분노를 푸는 게 목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강씨와 하피모 회원들이 선택한 대상이 하나님의 교회다. 하나님의 교회가 주류 기독교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 뿐이다. 즉,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정말 심각한, 근거 있는 피해를 당했다기보다 화풀이 대상으로 이 교회를 선택한 것이다.


Q : 재산 갈취에 관한 부분은 어떤가.
A : 이 사람은 재산을 갖다 바쳐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될 것이다. 중국 하얼빈 행적에서도 ‘귀중품을 창밖으로 갖다 버려라’라고도 이야기하고 있다. 돈보다 자신이 인정받고, 중요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을 무시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 저변에는 폭력의 경험이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전력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는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진 게 아닐 것이다. 어찌 보면 왜곡된 영웅 심리라고 볼 수도 있다. 하피모에서는 앞에 나서서 시위를 주도해주기 때문에 이 사람의 효용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이 사람은 하피모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강씨에게는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출처<법무경찰신문>

하피모는 전문가들도 과대망상증 이라고 할정도로 위험한 단체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중에 진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미 하피모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단체로 법에 판결을 받은 단체입니다.
더 이상  하피모와 같은 단체로 인해서 피해받는 이가 없어야 합니다.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아버지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의 신성

남성과 여성의 존재 이유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고 궁금해 하는것이 죽고 사는것에 대한 문제인것같다,
남성과 여성이 왜 존재하는지는 별로 궁금해하지않고 생각지를 못하고있다.
그런데 몇몇 생물학자들은 양성의 존재에 대해 왜?라는 의문점을 갖게된다.

1960년대에 이르러 몇몇 생물학자들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양성의 존재는 참으로 오랫동안 너무도 당연한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생물들이 양성생식을 한다는 사실이 성의 존재에 대한 무관심을 낳은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부터는 성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물학자들의 수많은 논문과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으며 1982년 캐나다의 진화생물학자 벨(Graham Bell)의 단언과 같이 성의 존재 문제는 생물학 문제 중 단연 ‘여왕’이 되었다(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의 칼럼 인용).

양성생식이 불가사의한 이유는 단성생식에 비해 근본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양성생식은 학자들이 ‘성의 생태적 비용’이라고 언급한 자손번식을 위해 거쳐야 할 수많은 단계들이 존재한다. 목숨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번식을 위한 장식 깃털은 포식자들로부터 도망치는 데 있어 불리하게 만들고 노랫소리는 포식자들을 불러 목숨까지 위협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생명체는 남성과 여성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또한 양성의 존재가 진화의 결과라면 3가지 성으로 진화한 생물도 있어야 하고, 4가지 성으로 진화한 생물도 있어야 하는데 왜 남성과 여성, 즉 양성으로만 존재하는가? 여러 생물학자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보편적이고 명확한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뜻을 담아 창조하셨다고 하셨다
(요한계시록 4:11).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알게 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 ‘남자’와 ‘여자’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성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 속에 담아 보여주셨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19~20)

하늘의 새도, 물속의 물고기도, 들판의 짐승들도 모두 양성으로 존재한다. 
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은 남성적 형상과 여성적 형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성경은 ‘아버지’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당연히 어머니 하나님이다. 사도 바울은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과학은 피조물인 인간의 관점에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떻게 지으셨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정교하게 조화된 생명체의 기관들은 
창조주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생명체가 남성과 여성의 양성으로 존재하며
 자손을 낳는 섭리로 일치된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신성을 분명히 깨닫게 하고 있다. 
수많은 생명체 중에 인류에게는 주변 세계를 깨달을 수 있는 
지각이라는 선물이 주어졌다. 
196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남성과 여성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다.
 지금이 바로 아버지와 어머니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신성을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할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령(아버지 하나님)과 신부(어머니 하나님)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날마다 우리 눈에 그 신성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생명수를 받으러 
오라고 부르신다. 창세전부터 존재하셨던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하나님을
 믿지않으려고 한다면 그에게 결코 구원이 주어질수없다,

출처)하나님의교회 진실알리미패스티브닷컴

2014년 8월 13일 수요일

하늘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사랑이신 어머니

하나의 인격체로서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가장 먼저 나를 품에 안아주시고, 젖을 먹여
양식을 공급해주시는 분,그렇게 먹이고 기르는
동안 내 몸 구석구석을 다 아시고 살피시며,
나로 인해 울고 웃는 분...,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리는 '어머니'입니다.


자녀들의 더러운 죄를 씻겨주시는 어머니의 바다는
하루도 잠잠할 날이 없습니다.
잔잔한 수평선 아래로 썩어지는 고통을 감추시고, 때로는
요동치는 풍파에 안위를 얻지 못하시면서도 
언제나 평온한 미소로 반겨주시는 하늘어머니....

하늘어머니의 한 없는 사랑을 받은 우리는 너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아는것을 예배드립니다~

꼼꼼히 따져보고 예배드리세요!

알지 못하고 하는 신앙은 맹목적인 신앙이 아닐까?
성경은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자와 아는 것을 예배하는 자가 있다고 알려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한복음 4:21~23)

=알지 못하는 예배는 무엇이고 아는 것을 예배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는 것을 예배한다는 것은 누구에게 드리는 예배인지, 왜 드려야 하는지, 누구의 명령인지, 언제 하는 것인지 등을 알고 드리는 예배이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는 것은 왜 하는 지도 모르고, 
누가 하라고 했는지도 모르는 예배가 되겠다. 알지 못하는 예배는 결국, 
알지 못하는 신을 경배할 수 밖에 없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사도행전 17:22~23)

아는 것을 예배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어떤 예배가 아는 것을 예배하는 것일까?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레위기 23:3~5)




안식일과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애굽기 20:8)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안식일은 창조주의 기념일이며 예수님께서 본 보이신 규례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고 또 잔(포도주)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유월절은 영생 주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약속이며 예수님께서 지키라 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과 안식일을 지킬 날짜와 방법, 그 의미를 성경에 정확히 기록해두셨다. 그리고 이를 믿고 행하는 자녀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유월절과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과 축복을 알고 드리는 예배다.

성경에서 확인한 유월절과 안식일을 지키는것이 아는것을 예배드리는 자들이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와 일요일 예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

세계기독교회사(이건사 발행, 송낙원 지음)를 살펴보면 크리스마스는 A.D. 354년, 일요일 예배는 A.D. 321년 로마에서 지켜지기 시작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로마인들이 ‘태양신 탄신일’로 기념했던 것을, 기독교인들이 그대로 받아들여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바꾼 것이다. 일요일도 로마인들이 태양신에게 예배했던 날로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존엄한 태양의 날’이라고 명하고 휴일로 법령화한 날이다.

그런데 태양신 예배를 대체 왜 교회에서 지키는 걸까?
이에 대해 지도자에게 물으면 '구원에 있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등의 애매한 말로 얼버무릴 뿐이다. 신자들 역시 그런 건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명확한 이유가 없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경배하는 행위인지, 누구의 명령으로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맹목적으로 습관대로 행할 뿐이다. 그러므로 일요일과 크리스마스는 알지 못하는 예배다. 어떤 신을 경배하는지도 모르는 예배인 것이다.

일요일과 크리스마스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면 그 어느 누구도 지키지않았을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순간 습관,전통이 되버려서 쉽게 버리지를 못한다.

크리스마스와 일요일 예배를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제부터라도 꼼꼼히 따져보고 정확히 알고 예배드리자! 성경에 기록된대로,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과 명하신대로 똑똑히 알고 말이다.
 출처)하나님의교회 알리미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서 꼼꼼히 따져보고 정확히 알고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이 담겨져있는 진리를 하나님의교회에서 제대로 알아보기를 원합니다.

2014년 8월 12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세요


우리가 기다렸던 하나님, 안상홍님!
아직까지 당신은 허공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다리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미 오셨다.

사람은 누구나 몸 속에 제 부모의 피가 흐른다. 부모의 피를 받아 생명을 얻어낸 것이다. 바로 이런 원리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당신의 피를 이어받도록 섭리하신 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성력 1월 14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을 준비케 하시고 마지막 만찬을 함께했다. 하늘에서 지은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죄인들을 대신해 십자가에 희생당하신 전야(前夜), 유언을 남기시는 자리였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예수님께서 유언을 남기시며 행하신 건 제자들과 유월절을 함께하며 무언가를 ‘먹는’ 것이었다. 그것은 떡과 포도주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먹는 떡이 당신의 살이 될 것이고, 유월절에 마시는 포도주가 당신의 피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일찍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다” 하신 말씀에 대한 이행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면 재앙에서 보호해주고 죄도 없애주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전에는 어린양을 잡아 대문 앞에 바르면 됐고, 이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약속을 어겼다. 그뿐 아니라 아예 하나님과의 약속을 없던 걸로 해버렸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서다. 아무도 하나님의 살과 피를 이어받을 수 없게 돼버렸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월절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사야 25:6~9)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란 오랫동안 포도주를 쓰지 않았다, 즉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의미다. 자그마치 1600년 동안이다. 세상 그 누구도 유월절을 지켜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유월절을 가르쳐주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안타깝게도 1600년이 흐르는 동안 유월절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지키면 이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유월절을 지켜야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다려온 하나님께서 영생의 약속이 있는 유월절을 가지고 오셨다.
안상홍님께서는 잃어버린 영생의 비밀을 가지고 오셔서 죽어가는 인류인생들에게
사망을 멸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교회 알리미패스티브닷컴

안상홍님을 증거하는 성경

성경은 누구를 증거한 것인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한복음5:39)

예수님께서 성경이 당신을 즉,구원자를 증거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도 바로 우리를
구원해줄 구원자에 대해서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그러므로 성경을 배제하고
구원에 대해서도 구원자에 대해서도 그 어떤 논의도 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구원자이심을 성경으로 증거하셨을까요?
그리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했던 사도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성경으로 증거했을까요?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누가복음24:27)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에 대해 성경을
가지고증거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실 구원자이십니다.당신의 존재를 기적과 이적으로 만으로
알리셨다면 모든 이들이 놀라운 능력을 보고 따랐을겁니다.그러나 성경을 가지고 증거를 하셨습니다. 그것은 구원자를 알수있는 방법이 오직 성경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사도행전7:2~3)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이사야)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사도행전8:30~35)

바울과 빌립도 모두 성경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구원자)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이는 누구라도 성경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믿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성경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입니다.

초림때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연구하며 그 어느누구보다 성경을 안다는 사람들이고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에 증거 되있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오히려 멸시와 조롱,결국에는 십자가에 못  박는 큰 죄악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습니다.
성경을 잘 알고 믿는다는 사람들이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첫째로,그들은 성경을 안다고 하였자만 실상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모세5경즉,성경)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요한복음5:46~47)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한복음5:220~21)

초림때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믿고 실제로 그 말씀이 현실 속에서 성취되는것은 절대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였지만, 실상은 자신의 생각 속에만 하나님을 가두어두었지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은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예언대로 오신 예수님을 부인하였고,
하나님을 전지전능하다 하면서도 사람되어 올수없다고 단정을 짓고 육체를 입고
임하신 하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시대 구원자이신 안상홍님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성경과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지식과 고정관념 속에 하나님을 가두어놓고
성경66권이 증거하는 아버지 안상홍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바라봤기 때문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축복을 받았듯이  이 시대 우리들도 자신의 생각과 편견은 버리고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서 성경을 살펴봐야 성경 66권이 증거하는 재림그리스도이신
안상홍님을 영접하여 구원의 축복을 받을수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 선교협회www.watv.org


2014년 8월 10일 일요일

재앙면하는 유월절=하나님의 교회

 애굽에서의 탈출기와 죄악 세상에서의 탈출

3500년 전, 이집트에서 노예생활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일어났던 아주 특별한 기적,
이집트 대탈출(Exodus)의 원동력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들이 이방에 노예가 되었다가 400년 후에 나오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 이 예언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과 그 자녀들이 이집트로 이주한 후 430년 되던 해에 실제로 이루어졌다.

이집트로 이주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고센 지역에 살게 되었다. 그리고 야곱과 요셉이 세상을 떠난 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가 등극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급속도로 인구가 증가하는 이스라엘에게서 이집트인들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학정을 일삼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일에 강제 동원됐다. 흙 이기기, 벽돌 굽기, 농사 등 그들의 노역은 고되고 힘들었다. 그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번성했다. 급기야 파라오는 민족말살정책을 펴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딸을 낳으면 살리고 아들을 낳으면 죽이도록 명령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태어났다. 모세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어느덧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예언의 길을 걷고 있었다.

모세의 나이 80세 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사역자가 되어 파라오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파라오는 왕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의 대부분이 그들에게서 나왔으므로 이집트의 주 노동력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 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파라오는 모세의 요청을 거절하고 더욱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어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셨다. 이집트의 모든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하여 식수가 고갈되는 재앙이 그 시작이었다. 이에 이집트인들이 고통을 호소하자, 파라오는 해방을 약속했다. 하지만 재앙이 그치자 다시 마음이 바뀌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집트 전역에 개구리가 들끓는 재앙을 내리셨다. 이, 파리, 악질( 전염병),
독종(피부병), 우박, 메뚜기 등의 재앙을 당하면서도 파라오는
쉽사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줄 뜻을 보이지 않았다.
아홉 번째 재앙이 내렸다.
이집트 전역에 3일 동안 어둠이 드리워졌다.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식현상으로 풀이되는, 이 죽음의 전조와도 같은 재앙에도 파라오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결정하셨다.


그리고 1월 14일(성력)을 그 시행일로 정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십사 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12:1~13)

죽음의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었다. 1월 14일 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친 후, 양의 피를 문기둥과 인방에 바르고 고기를 구워 서둘러 무교병, 쓴 나물과 함께 먹으며 숨죽여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기를 기다렸다.

여기저기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님의 경고는 정확했다.
이 열 번째 재앙으로 파라오의 장자와 이집트의 모든 장자와 초태생이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사했다. 문기둥과 인방에 바른 양의 피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였기 때문에 재앙을 내리는 천사들이 그 집은 넘어갔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날을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이라고 칭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라오는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모세의 요구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줄 것을 수락했다. 이집트 사람들도 그동안 온갖 재앙을 겪어왔던 터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패물과 의복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어주며 속히 떠나라고 재촉했다.

유월절 밤은 이집트에서 지낸 마지막 밤이 되었다. 그날 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20세 이상 장정만 60만 명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방의 기쁨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구원자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규례로 삼아 대대로 지키게 하였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에서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곳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 너는 그날에 네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 하고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연년이 기한에 이르러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출애굽기 13:3~10)

어린양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악세상에서 해방을 받아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내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자만이 그 속에 영생이 있다(요한복음6:53)
하셨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방법은 십자가에 운명하시기전에 제자들과 함께 지켰던
새언약 유월절로 허락해 놓으셨다.(마태복음26:17)(누가복음22:17)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간의 기나긴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날,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세상에서 해방받는 날,그 역사적인 날이 유월절이다.
유월절은 히브리어로 페사흐, 헬라어로 파스카(πασκα), 영어로 패스오버(Passover), 한자로는 유(逾-넘을 유), 월(越-건널 월), 절(節- 마디 절)로써 ‘(재앙이) 넘어간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늘날 죄사함과 영생을 얻고, 재앙이 넘어가는 새 언약 유월절을 세상 어느 교회에서 지키는가 이렇게 귀중한 진리를 지키지도 않고 전하지도않는다.오직 하나님의교회에서 만이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고있고 전하고있다..

하나님의 교회진실알리미www.pasteve.com


2014년 8월 9일 토요일

하피모 , 이단 척결자?의 정체

황당하고 기가막힌 하피모 , 이단 척결자?


이 목사는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서울상담소 소장을 맡고 있고, 
강 씨는 자칭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이 목사는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에서 ‘개종의 대상’으로 볼 법한 강근병 씨와 밀착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강 씨는 지난 2007년 11월 중국 하얼빈에서 “중국 모든 교회에 나 자신이 재림예수임을 알린다”라고 밝혔다. 이른바 ‘하얼빈 선언’이다. 

자신이 재림주라고 주장한 강 씨는 
  • “2006년 3월 7일 회사를 퇴직한 후 그 해 오순절을 앞두고 기도를 시작한지 30초 만에 앞에 등장한 천사의 모습을 보게 됨. 

  • 이후 눈에서 황금색 액체가 눈물이 흐르듯 흐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구약성경의 비밀들을 보게 됨.”, 

  • “하나님의 교회 모든 성도는 들으라. 당시 하얼빈에서 내 와이셔츠에 묻어 있었던 것은 피가 아니라 고추장이다. 2천 년 전 피를 흘렸으면 됐지 다시 한 번 피 흘리기를 바라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또 “2천 년 전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기 전 그 모습을 재연해서 나 자신이 재림예수임을 알리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강 씨는 헌금, 십일조, 예배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시위 과정에서 타 종교를 비방하는 표현과 모욕적인 말로 자주 물의를 빚고 있는데, 시위 도중 지나가는 개를 보며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따라가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해 주변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강 씨는 최근 하나님의 교회 탈퇴자들의 모임 ‘시오니즘’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이 같은 강 씨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이 목사가 강 씨의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교계 안팎에서도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목사가 소위 ‘이단척결’을 주장하면서도 강 씨와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실제 강 씨를 재림예수로 인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이들이 과연 정상적인 사상을 가진 자들일까요?
 황당한 말들을 해가면서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이단척결을 한다는 한 교회의 목사라는 사람도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위해 상부상조 하면서 특정집단을 모욕하는 행위는 실제 법적으로도 처벌받게 됩니다.

(법무경찰신문)

2014년 8월 8일 금요일

예언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예언을 아는 것과 믿는 것

예수께서 나신 때, 동방으로부터 온 세 사람이 예루살렘에 들어선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왔습니다."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 거민이 그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불러 모으고 묻는다.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선지자가 기록하기를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목자가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헤롯은 동방에서 온 사람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시기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신신당부를 한다.

"가서 아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찾거든 내게 고하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러나 예수님께 경배한 뒤, 꿈에 헤롯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은 그들은 다른길로
돌아간다. 저희가 떠난 후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한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라.
내가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요셉이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그곳에 거하니
 이는 모두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일이다.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결코 우연은 없다.

하나님의 예언은 인생들이 알든 모르든 한 치의 오차 없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다.
믿음이란 단순한 앎이 아니라,  예언의 확실한 성취를 믿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 나시리라는 예언을 알고도 그 예언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아니었다.
예언을 알았으면서도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 그리스도를 향해 감히 칼을 겨누려 했던 
헤롯왕의 행동은 말할 가치도 없다.
지금 이순간에도 하나님의 예언은 우주의 질서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언을 알고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되자.

<8월호 엘로히스트 중에서>

마지막 시대의 예언

구원에 이르게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히브리서9:2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하시는도다.....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시록22:17)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계시록14:1)

마지막때에는 구원받을 성도들이 성령과 신부이신 아버지 안상홍님과 
하늘 어머니 계시는시온산에 함께 할것에 대한 예언이 있다.
예언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거하고 있는것이다.

하나님의교회 www.watv.org

2014년 8월 7일 목요일

하나님의 교회에서 받는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첫 번째 선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그의 저서 '로마제국 쇠망사'에 이렇게 적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이 시대에 바티칸(로마 교황청)을 방문한다면 이처럼 장엄한 사원에서 그처럼 신비로운 의식으로 숭배받는 신의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나 베드로가 옥스퍼드나 제네바(개신교 교리를 가르치는 신학교)에 가게 된다면 교리 문답서를 새로 외우고 또 그들의 주님에 관한 정통파 주석가들의 해석을 새로 공부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십수 년 동안 유럽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역사가의 말을 빌어보건대 지금의 기독교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배우고 가르쳤던 진리들과는 전혀 다른 것들로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오늘날에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본을 보이시며 가르치셨던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면 오히려 이상히 여기고 이단시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단이라고 한다면 정말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한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모순을 낳고 있는 것이다.

세례, 즉 침례에 대해서도 많은 교회에서 잘못 이해하고 판단하고 있는 진리 가운데 하나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어느 것 하나 우리의 구원과 상관없는 것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모두 다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는 생명의 진리다.

종교개혁 이후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강조하다 보니 침례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예식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 침례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마가복음 16:16)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1)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사도행전 2:38)

죄인에게 죄를 용서받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침례는 죄를 씻어내며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님을 만나 받게 되는 첫 번째 선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아들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태복음 28:19~20)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베풀어주시는 선물이다. 사람의 생각과 방법이 하나님보다 더 논리적일 수 없고 더 합당할 수 없다.
사람들이 임의로 정한 제도를 따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예수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할 것이다.


출처:패스티브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