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사람의 영혼에 대한 문제는 종교를 떠나 오랜 세월 회자되고 있다. 영혼 존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결론 없이 이어진다.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이 많다. 겨울이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손바닥에 득실대는 세균들…. 인간이 가진 시력으로는 그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이들의 존재를 증상이나 증거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인플루엔자의 증상은 열과 몸살, 기침 등이 있으며, 동장군이 몰고 온 찬바람 또한 피부로 그 증거를 체감할 수 있다. 손의 세균은 현미경을 통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혼의 존재는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 성경에서 그 해답을 살펴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세기 2:7)
생령이란 ‘산 영혼’, ‘산 생명’이란 뜻이다. 흙이라는 육체 속에 하나님의 생기(영혼)로 사람이 창조됐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사람 모두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존재를 어떤 증거로 확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명쾌한 답이다. 누구든지 살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존재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숨쉬고, 먹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모든 것, 그것이 바로 사람 속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사람의 몸속에 영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열왕기상 17:22)
이 내용은 엘리야라는 선지자가 사르밧 지역에 사는 한 과부를 만나 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장면이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아이의 영혼을 몸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빠져나온 영혼을 몸으로 돌려보내 아이를 살아나게 하셨다. 즉 영혼이 몸과 분리되면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의 몸에 영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죽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성경에서는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서 12:7)
‘돌아간다’는 의미는 ‘왔던 곳으로 다시 감’을 뜻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에서 나와 학교로 간 아이가 하교 후에 돌아간다면 어디로 갈까. 다시 집으로 가야 ‘돌아간다’는 말이 성립된다. 만약 아이가 하교 후 도서관에 들른다면 이는 ‘돌아간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게 되면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육체는 흙에서 왔기에 땅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 살아 있던 사람은, 수명을 다한 후 영혼과 육체의 분리로 죽게 된다.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습관이 하나 있다. 예로부터 사람의 죽음에 대해 ‘돌아가셨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영혼은 아마도 육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는 옷을 지어 입기 시작했다. 옷은 유구한 역사 속에 변화를 거듭해 갔다. 그리고 명품이라는 브랜드 속에서 고가의 제품으로 태어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몸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옷이 아무리 비싸도 저절로 혼자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벗어 놓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우리의 몸이 이와 같다. 영혼에서 탈피된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존재가 우리 몸이다.
벗어놓은 옷과 같다. 중요성을 논하자면 옷보다 몸이 중요하듯 육체보다 영혼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이다.
영혼의 존재가 있기에 하나님을 믿는 목적도 영혼 구원에 있는것이다.
취미생활, 대인관계,상업적인 목적을 갖고 교회를 찾는사람들이 과연
영혼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볼수없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8~9)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영혼의 구원이다. 영혼구원이 없는 신앙은 월급 없는 직장과 같다. 즐겁고 보람찬 것 같아도 결국 헛된 수고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교회들이 서로 다른 교리를 가르치며 서로 다른 모습의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구원을 받는 올바른 믿음의 길은 무엇일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전하는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많이 행하였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신앙, 불법을 행하는 신앙은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수고는 많이 하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영혼의 구원을 얻는 이유가 뭘까?
하나님의 말씀이 구원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55)
영생을 약속하신 이 말씀을 따르는 여부에 따라 생명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는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9~28)
육체의 삶은 잠시 있다 없어질 순간의 시간들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삶은 영원토록 이어지는 것이지요.지금 현재 준비해야할것은
영원한 삶인 영혼의 삶입니다.
하늘 아버지 안상홍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는 새 언약 유월절을 알려주셨습니다.
출처)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이세상이 다 인줄 알고 살았는데..영혼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답글삭제그리고 안상홍님을 통해 영혼의 삶을 준비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준비할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안상홍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영혼의 삶은 영원토록 이어지는 것이지요.지금 현재 준비해야할 것은 영원한 삶인 영혼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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